[평신도 신학강좌] 말씀묵상 (Lectio Divina)

입력 2011-08-28 17:46


갈림길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마지막 연이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선택한 길 때문에 평생 얼마나 후회했을까. 에덴에서 쫓겨나 에덴의 동쪽에 살면서 그때 그 일 때문에 얼마나 회한에 사무쳤을까. 그랬다. 그 갈림길에서 그 선택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사건은 두 가지 말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나님 말씀과 유혹자의 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확하게 이러했다. 창세기 2장 17절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러나 유혹자 뱀의 말은 달랐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었다. 3장 4절을 보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세 이래 최초의 범죄는 하나님 말씀에 관련돼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 말씀을 주셨다. 인격적 책임과 결단이 필요한 말씀 말이다.

하나님이 생물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엔 인격적 책임이나 결단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생육과 번성과 충만이라는 첫 번째 덩어리 말씀 외에 다른 한 덩어리 말씀을 주신다. 정복하고 다스리고 먹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말씀 덩어리는 자신이 잘 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른 존재를 돌보고 가꾸라는 것이다. 다른 피조물에 대한 목양의 책임이다. 여기에는 인격적인 결단과 반응이 필요하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곧 책임적 존재라는 것은 스스로 최종 결정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최종 결정자가 맡긴 일에 대해 보고하고 결산해야 한다. 본디 사람은 자신보다 위에 있는 권위 앞에서 책임을 지는 존재다. 위에 있는 권위는 창조주인 하나님이시다.

창조주와 그의 명령을 받고 있는 피조물, 하나님과 사람의 이 관계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사람은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 나무가 그걸 가르쳐 준다. 사람은 자신 이외의 모든 피조물보다 탁월하다. 그들을 돌보고 가꾸는 위치에 있어서 그렇다. 그러나 이 일은 사람 스스로 결정한 게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셨고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그 나무가 이걸 깨우쳐 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금지 규정이다. 사람이 책임적 피조물이라는 걸 깨우치는 가시적인 장치요 표지다. 여기에 연관하여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사람은 깊이 묵상하여 살아 내야 했다. 말씀 묵상과 그에 이어지는 삶이다.

최초의 범죄는 말씀을 묵상하는 데 실패한 결과다. 창조주 앞에서 책임적 존재임을 늘 기억하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면, 처음 사람은 그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담과 하와가 세상을 떠날 때 어떤 유언을 남겼을까. 평생 가슴을 아리게 했을 그 갈림길 사건에 연관된 것 아니었을까. 자손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말씀을 살아 내야 한다는 것 아니었을까. 에덴이 있는 서쪽을 가리키면서.

지형은 목사(서울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