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폴리 르포… 곳곳서 총성, 거리엔 검문하는 시민군 뿐 인적없어

입력 2011-08-27 01:36
리비아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26일 오후(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국제공항 근처 알메헤리호텔 1층 로비에서 들리는 총성은 실제 상황이었다. 콩 볶는 듯하더니 한순간 다시 잠잠해지는 포성과 총소리가 계속됐다.

이날 한복판에서 만난 시민군들의 모습은 전투태세에 임하는 그 자체였다. 30대 초반의 알리 무라드는 양손으로 소총을 든 채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건물 고층에 숨어 있는 카다피 정부군의 저격수들”이라고 귀띔했다. 핵심 교전은 카다피 요새 밥 알아지지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총소리에 귀 기울이면서도 크게 놀라지 않고 이내 평정심을 찾는 시민군의 모습은 이미 이 같은 상황에 익숙해졌음을 짐작케 했다. 거리는 시민군과 외국 기자들을 태우려는 택시 외에 일반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한산하다. 까맣게 타버린 차량들이 곳곳에 뒤집혀 있었고, 은행과 상점들도 거의 폐쇄된 상태였다.

건물 벽에는 “2월 17일 혁명의 날을 기억하라”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리비아에 자유가 주어졌다” 등과 같은 낙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러한 배경 뒤로는 수십 명의 사람이 줄지어 서 있었다. 빵을 먹기 위해 배급소 앞에 모여든 무리였다. 시민군과 달리 방탄모나 방탄조끼를 입지 않은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검문소 역시 전쟁 상황을 방불케 했다. 무장한 시민군은 대부분 30대 초중반 청년으로 소총과 수첩을 들고 거리를 지나가는 차량 운전사의 신분을 확인하고 수화물에 폭탄물 등이 없는지 뒤져봤다. 무의식적으로 총구를 운전석에 있는 일반 시민에게 겨누는 실수를 보이기도 했다. 총기 소지 시 총구를 항상 하늘로 향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지침조차 숙달돼 있지 않았다. 이 가운데 한쪽에서는 소형 라디오를 통해 카다피의 행방과 과도정부의 동향이 꾸준히 전해지고 있었다.

기자가 트리폴리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도로에는 리비아 과도정부의 국기를 꽂은 차량들이 작은 행렬을 이뤘다. 사람들은 가끔 창밖으로 과도정부 국기를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리비아 국경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만난 어느 리비아인 집에서 하루를 묵은 뒤 그의 차를 빌려 타고 트리폴리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내다본 풍경들이었다.

곳곳에서 검게 타 그을린 탱크가 마을 상점 앞에 고철덩어리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건물 곳곳에는 총탄 흔적이 선명했다. 4, 5층의 주택 건물 발코니는 포탄으로 다 허물어졌고, 마을회관 같은 건물은 뼈대만 남기고 완전히 허물어져 내려앉아 버렸다. 상점 문은 전부 닫혀 있었고, 거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차량 검문을 하는 4~5명의 시민군과 터벅터벅 걸어가는 낙타 몇 마리만 있을 뿐이었다.

트리폴리에 가까워지자 길거리에서는 아랍어로 “2월 17일 리비아 자유의 탄생”이라고 쓰인 기념 티셔츠와 두건, 과도정부 국기와 스티커를 파는 노점상이 많아졌다. 기자가 트리폴리에 입성한 시간은 이날 11시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기자들이 독재자를 몰아낸 리비아인들의 역사적인 현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트리폴리=노석조 특파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