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에서 활동하는 함경록(33·사진) 감독의 첫 장편 ‘숨’은 장애인 문제를 다룬 영화다.
어려서 장애인 복지시설에 맡겨진 뒤 그곳에서 자라 성인이 된 뇌병변(뇌성마비) 장애인 여성 수희(박지원)의 이야기다. 수희는 힘든 여건이지만 같은 시설에서 사는 지적장애인 민수(이원섭)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맛보지만 민수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로 내몰린다.
김제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이 바탕이 됐지만 이 작품은 일반적인 ‘장애인 영화’의 도식과는 거리를 둔다. 시설의 비리와 인권 유린 등 사건 흐름에 주목하기보다는 장애인의 내면에 집중한다. 장애인 여성이 꿈꾸는 평범한 삶, 선의든 악의든 그런 삶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주변의 편견을 건조하고 느릿한 영상으로 포착해 낸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함 감독은 “장애인 여성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쁘게 보이고 싶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싶은, 비장애인과 다를 게 없는 온전한 인격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극적인 사건도 없이 느릿느릿하게 전개된다. 많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이는 짐작만 할 정도이지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다. 청소하고, 빨래를 널고, 민수에게 잘 보이려고 립스틱을 바르거나 목걸이를 차는 장면 등 수희의 일상을 인내 있게 담아내는 게 거의 전부다.
함 감독은 “이 영화의 목적은 수희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였다. 그래서 이야기는 가급적 줄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수희의 동선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함 감독은 인권 침해는 폭행이나 사망, 횡령비리 등 큰 사건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소소한 일상에서 장애인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장애인 시설이나 장애인 인권단체 관계자들도 장애인을 약자나 돌봐주어야 할 대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선의에서 한 행동들도 (장애인이 원하는 게 아니라면) 폭력이 될 수 있어요.”
영화에서 자원봉사자, 인권단체 관계자, 쉼터 선생님들은 수희의 임신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사랑에 의한 임신 가능성을 배제한다. 성폭행에 의한 원치 않은 임신으로 단정하고 수희가 원하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려 한다.
함 감독은 “수희가 소중히 여기는 일상과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장애인들과의 올바른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영화를 통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 감독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거동도 불편한 뇌병변 장애인 수희를 연기한 박지원(29)을 칭찬했다. 박지원은 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에 재학 중인 뇌병변 1급 장애인으로, 중중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에서 일하다 함 감독에게 우연한 기회에 캐스팅됐다.
함 감독은 “(박지원은) 전문적으로 연기를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상황에 잘 몰입했고, 수희에게 감정이입을 확실하게 했다. 상황만 설명해 주면 알아서 척척 연기했다. 내가 생각했던 수희 역을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해 냈다”고 말했다.
‘숨’은 2009년 11월 완성된 작품으로 로테르담영화제 바르셀로나아시아영화제 등에 초청됐고, 지난해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에서 버터플라이상, 브뤼셀유럽영화제 황금시대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다. 하지만 일반 상영 기회를 잡지 못하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작으로 선정돼 일반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9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
장애인 영화 ‘숨’ 함경록 감독 “장애인은 아이를 가지면 안되나요”
입력 2011-08-26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