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거마대학생’ 합숙소 압수수색… 20평 집에 15명 ‘콩나물 합숙’ 종일 감시당하며 강매 내몰려

입력 2011-08-26 01:34


25일 오후 6시40분쯤 서울 송파경찰서 다단계특별수사팀이 마천동의 한 주택가 골목에 있는 1층짜리 주택에 들이닥쳤다.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의 다단계업체에 소속돼 ‘거마대학생’이라 불리는 학생들의 합숙소다.

대문을 열자 방 안에 둘러앉아 무언가를 논의하던 남학생 6명과 여학생 2명이 놀라서 일어났다.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던 남학생 2명이 경찰관을 막아섰다. 또 다른 학생은 뒤따라 들어가는 기자를 제지했다. 그 사이 양복을 입은 남성이 황급히 무언가를 숨기려 했다. 경찰이 재빨리 뛰어가 남성이 숨기려 한 노트를 뺏어 들었다. 노트엔 ‘노하우 수첩’이라고 씌어 있었다.

경찰이 급습한 곳은 불법 다단계업체 ‘미래컴퍼니’가 운영하는 합숙소였다. 양복 입은 남성은 ‘엠대리’라 불리는 중간관리자 심모(23)씨였다. 경찰은 심씨의 방에서 대학생 관리요령을 담은 노하우 수첩과 각종 장부를 압수했다. 심씨는 “개인적인 물건을 왜 가져가느냐”고 항의했다. 기자가 학생들에게 말을 걸자 “물어보지 말라”며 대답을 못하게 했다.

학생들은 체념한 표정으로 경찰 조사에 순순히 응했다. 20평 남짓한 집에서 집단생활을 해온 이들은 심씨의 지시를 각자 노트에 적어놓고 금과옥조처럼 지키고 있었다. 강모(21·여)씨의 노트에는 ‘얼마나 버는가’라고 고객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는지, 불법 판매가 들통 났을 때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매일 오전 6시~오후 4시 본사로 출근해 고객 유인방법을 교육받고 전화를 돌려 블루베리 원액 등 자신들이 회사에서 구입한 건강식품을 팔았다. 합숙소로 퇴근해서도 외출이 통제된 채 신씨에게 추가 교육을 받았다. 휴대전화도 신씨가 수거해 보관했다.

학생들은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회사의 거짓말을 진실처럼 믿었다. 2개월째 합숙 중이라는 이모(23)씨는 “열심히 하면 한달에 1000만원은 벌 수 있다”며 “이곳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10명이 생활하는 집 신발장엔 합숙소에서 학생들이 버리고 간 신발 30여 켤레가 남아 있었다. 터무니없이 비싼 제품을 산 뒤 판매하지 못하면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 새로운 판매원을 끌어들여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일부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일부는 빚을 갚지 못한 채 합숙소에서 도망간다. 경찰 관계자는 “서로 딱한 처지를 위로하고 기대다 보니 더 빠져드는 것 같다”고 했다.

경찰청은 지난 1일부터 2개월간 불법다단계 특별단속에 나섰다. 대학생 판매원 5000여명이 밀집된 거여·마천동 일대를 관할하는 송파서는 지난 1일 이후 지금까지 4개 업체를 압수수색해 40여명을 입건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