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 단체 ‘왕재산’ 北 지령 받고 정치권 침투

입력 2011-08-26 01:30

김일성을 직접 만나 지시를 받고, 국내에서 18년간 활동해 온 반국가단체가 공안당국에 적발됐다. 검찰은 이들이 북한 노동당 대남연락부 후신인 225국 지시에 따라 남한 내 노동운동권은 물론 국회 등 정치권 침투까지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이진한)와 국가정보원은 25일 북한 225국과 연계된 반국가단체 ‘왕재산’을 조직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총책 김모(48), 인천지역책 임모(46), 서울지역책 이모(48)씨 등 5명을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간첩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민주노동당 인천지역 현역 구청장 등 민노당 관계자들도 수사 중이다.

◇정치권 진입 시도=검찰에 따르면 총책 김씨는 김일성 사망 1년 전인 1993년 8월 26일 김일성을 직접 만나 남한에 지하당을 조직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80년대 주사파로 학생운동을 했던 김씨는 곧바로 학교 후배들을 포섭했다. 북한 노동당 225국은 김씨에게 선거 때마다 진보세력의 역량을 확대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지난 5월 지령문에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진보대통합을 구성해 진보신당 등 다른 진보정당들을 고사시키라는 내용이 담겼다.

서울지역책 이씨는 2008년 18대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경기도 남양주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으로 일했던 그는 한 대권주자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공안1부장은 “북한이 이들을 정치권에 침투시켜 상층부 통일전선을 구축하려 했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테러계획=왕재산 조직은 2006년 1월 북한으로부터 인천지역을 혁명의 전략적 거점으로 삼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에는 보다 공격적으로 지침을 내렸다. 골자는 2014년까지 인천 남동구, 남구, 동구에서 유사시 행정기관과 방송국을 장악하라는 것이다. 특히 국가 기간시설이 몰려 있는 인천 남구를 지칭하며 저유소, 보병사단, 공수특전단 등에 핵심 구성원을 배치해 2014년까지 폭파 준비를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왕재산은 “유사시 동원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은 200여명”이라고 보고했다.

이들은 2005년 맥아더 동상 철거시위, 문학산 패트리엇 미사일 배치 저지시위에도 참가했다.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반대투쟁 등에도 참석했다. 왕재산 조직은 우리 군의 전시기동계획, 야전교범, 발전소와 가스기지 및 백령도 등의 지형정보도 외장 하드디스크에 담아 중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만난 북한 공작원에게 전달했다.

◇김일성 면담 주장에 민변 등 반발=검찰은 김씨가 93년 김일성 주석 면담에서 남한 내 유일 영도체계 구축, 김일성 부자 혁명사상 남한 사회 보급 등 5대 과업을 담은 ‘접견교시’를 하달 받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 증거로 김씨가 김일성을 만났다고 인정한 이들의 자체 문건을 공개했다. 김씨는 북한으로부터 ‘관덕봉’이라는 명칭을 받았으며 다른 조직책도 ‘관순봉’ ‘관상봉’ 등의 이름으로 북한에 보고했다.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다른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들과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민변 이광철 변호사는 “검찰이 증거력이 부족한 자료를 토대로 기소한 사건”이라며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용훈·우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