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사랑의 빚
입력 2011-08-25 17:58
아는 분한테 문자를 보냈다. 친정어머님 상을 치른 뒤 견딜 만하냐는 문자였다. 막내인 그분은 친정엄마가 90세를 훌쩍 넘기고 오래 병석에 있었는데도 돌아가실까 봐 늘 애면글면했다. 짐작대로 답문자엔 눈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돌아가시니 얼굴도 만질 수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어 몹시 마음이 아프단다. 친정엄마 살아계실 때 잘하라며 당부를 잊지 않았다.
나 역시 친정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마음은 늘 갖고 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 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옛시조도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런데 행동은 마음의 반에 반도 못 따라간다. 게으름 탓일까. 자식이란 다 그런 탓일까.
80세가 넘은 엄마는 풍습에 따라 조혼을 했고, 외며느리라 홀시어머니 밑에서 혹독한 시집살이도 하고, 바깥일에 바쁜 아버지에게 따뜻한 정도 받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이, 자기 살까지 먹이로 주며 새끼를 키우는 염낭거미처럼 자식들에게 주기만 했다.
오래 전, 당신을 위해선 한 푼까지 아끼고 돈 생기면 은행으로 달려가던 엄마가 막내딸 혼수는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안달을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한테 못 받았으면서 억울하지 않아?” 농담으로 눙치긴 했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무척 미안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히려 해줄 수 있어 좋다며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그래도 눈곱만큼은 염치가 있었던 나는 팔짱을 끼며 약속을 했다.
“나중에 다 갚을게.” “나한테 말고 네 자식한테 갚으렴.” 그때 웃으며 엄마가 한 대답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 말 중에서 내가 제일 잘 듣는 말이기도 하다. 약 잘 먹어라, 운동 좀 해라, 집에 한 번 와라. 그 많은 말들은 잘 안 듣는데 자식한테 갚으라는 말은 아주 잘 듣고 엄마보다 내 자식을 먼저 챙긴다. 시대가 그렇다며 시대 핑계를 대면서.
전 시대엔 부모를 자식보다 먼저 챙기는 것이 미덕이었다. 이젠 그런 미덕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니 10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독거노인의 숫자에 자식 있는 노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었고, 그 중엔 전문직 자식을 둔 노인들도 있다는 뉴스가 많이 놀랍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모가 마치 잘라 버릴 수 있는 도마뱀 꼬리 같다는 생각에 마음은 씁쓸했다.
우리는 가끔 잊고 사는 것 같다. 부모님 덕에 내가 있고, 나도 부모님처럼 늙고, 나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죽음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사회복지 차원에서 국가의 역할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자식의 관심 속에서 노후를 보내고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더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내가 받은 반만큼이라도 사랑의 빚을 갚으면 해결되는 문제이리라.
이제 보름 뒤면 추석이다. 벌써 추석선물들이 백화점이나 시장 진열대에 나와 어서 사가라며 재촉하고 있다.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이 좋아할 선물을 들고 가 못 지킬 약속이 될지라도 노후를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쳐보면 어떨까. 둥근 보름달 아래서 어깨를 주무르며.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