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의 역사

입력 2011-08-25 17:48


청교도주의의 신학사상 - 직장을 천국으로 만드는 성화의 삶

청교도주의는 과연 칼뱅주의인가? 아니면 칼뱅주의를 넘어서고 있는가? 학자들에 따라 견해가 각각 다르다. 대체로 칼뱅의 사상을 그대로 수용한 게 칼뱅주의로 이해되지만 칼뱅의 사상을 더욱 발전시킨 점들도 많다. 청교도주의자들의 공통된 참고서는 칼뱅의 ‘기독교강요’다. 그러나 이 기독교강요에 근거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기독교강요와 다른 사상적 변화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기독교강요에서는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의 이중예정(double predestination)을 강조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선택된 자의 예정을 말하는 단일예정(single predestination)만을 강조한다. 그러면 칼뱅의 사상에 근거를 둔 청교도주의의 신학적 특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구원의 확신과 성화. 내가 예정에 든 사람인지 아닌지?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은 삶의 거룩성과 경건성으로 나타남을 강조하는 데서 공통적이다. 역사신학자 워커나 제베르크 등이 칼뱅신학의 중심은 예정이 아니라 구원의 확증 곧 성화라고 말한다. 구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이지만 우리의 성화 행위가 후속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청교도주의도 칼뱅사상을 받아들인다. 신앙의 확실성은 그리스도의 은총 속에만 있다. 그러나 삶의 경건성과 거룩성은 참된 신앙을 하나님에 대한 허구적이고 죽은 지식으로부터 구별 짓는다.

이러한 칼뱅과 청교도주의의 성화론은 직업소명설과 자본주의의 발전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칼뱅이나 청교도들에게 있어 직업관은 단순히 루터처럼 성실한 직장인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직장을 천국으로 만드는 적극적인 성화의 삶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정과 구원의 확신을 위한 적극적인 직장생활의 행동은 성화론에 기초한 행동이다. 곧 하나님의 영광(soli gloria Deo)을 돌리는 직업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작은 예수로서의 구원을 확증하며 경제적 자본을 형성해 갈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거듭남의 강조. 칼뱅은 칭의(justification)를 루터와 함께 강하게 역설했지만 거듭남은 그렇게 중요한 구원론의 핵심으로 강조하지 않았다. 물론 거듭남을 기독교강요에서 언급한 것은 사실이나 칭의에 대해 길게 서술한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너무나 약하게 서술했다. 그러나 청교도주의 신학은 거듭남의 신학이라고 말할 정도로 청교도들은 거듭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청교도 목회자 중에 가장 성공적인 목회자라고 알려진 리차드 박스터는 그의 목회를 거듭남 중심의 목회로 표현하고 있다.

박스터는 “내가 그곳에 처음에 왔을 때는 한 거리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가정은 한 가정이었으나 내가 그곳을 떠날 때에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가정은 여러 거리에서 몇 가정밖에 안 되었다. 내가 개인 면담과 그들을 교리 문답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마을 전체에서 오기를 거절한 가족은 매우 적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 않거나 표면상으로 경건한 삶에 대해 진지한 약속을 하지 않고 나와 헤어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고백한다.

김홍기 총장 (감리교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