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 나도 이제 사람이고 싶다”
입력 2011-08-25 18:43
공주치료감호소 25명 ‘자발적 치료’ 왜 선택했나
김수철, 김길태, 조두순. 어린이를 대상으로 끔찍한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다. 이들 사건 때문에 아동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이 무척 높아졌다.
성범죄, 특히 아동 성범죄는 재범률도 매우 높은 편이다. 그래서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전자발찌 착용, 신상정보 공개 등 다양한 방법이 총동원되고 있다.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이 지난달부터 발효돼 이른바 ‘화학적 거세’도 가능해졌다. 이 법에 따라 화학적 거세를 집행하려면 검사의 청구와 판사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범죄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시행이 가능하다. 아직 강제집행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화학적 거세를 받겠다고 나선 이들이 있다. 자신의 의지로 비정상적인 성적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이 방법을 택한 사람들이다. 현재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옛 공주 치료감호소) 성폭력범죄자 치료재활센터의 재소자 53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5명이 자발적으로 화학적 거세 치료에 응하고 있다.
자발적 거세 1호가 된 소아기호증 환자
24일 성폭력범죄자 치료재활센터 면담실에 들어선 A(27)는 날씬하고 훤칠했다. 그는 미성년자 성추행을 저질렀고 이곳에 와서 소아기호증 판정을 받았다. 그는 화학적 거세를 선택한 최초의 성범죄자다.
어렸을 때부터 왠지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성인에게도 끌리긴 하는데 어린애와 어른 중에 선택하라면, 어린이가 더 끌렸습니다. 병이죠.
군대 갔다 오고 나서부터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삐뚤어진 호기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혼자 상상만 하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갔습니다. 인터넷 채팅으로 고등학생을 만났고, 그러다가 점점 만나는 상대의 나이가 어려졌고요.
이곳에 와서도 그 문제로 힘들던 차에 화학적 거세 치료 이야기를 듣고 자원했습니다.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하니까요. 4월말부터 화학적 거세 주사를 한 달에 한 번씩 맞았습니다. 지금은 성에 관한 생각이 전혀 안 듭니다. 일부러 이상한 상상을 해보려고 해도 3∼4초 정도 지나면 바로 끝납니다.
부작용…, 솔직히 겁납니다. 어쩌면 영원히 남자 구실을 못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더 중요한 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작용이 무서워서 치료를 거부했다가 또 범죄를 저질러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끝날 겁니다.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선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난대요. 부모고 뭐고 없답니다. 무섭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두려워요.
세상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압니다. 그래도 치료 잘 받고 착하게 살면 시선이 조금씩 변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병원 외과 중환자실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했습니다. 군대 있을 때도 의무병을 했고요. 힘들었지만 뿌듯했거든요. 나가면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대학 가려고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해외 의료봉사 같은 것도 해보고 싶습니다.
피해자에겐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너무나도 미안하고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그 아이가 주위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행복하게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성도착증 성폭력 3범의 후회
B(39)는 성폭력 3범이다. 21살에 성폭행으로 5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첫 번째 교도소 인생이 시작됐고, 같은 범죄를 저질러 다시 12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세 번째 잘못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현재 13년이 남은 상태다. 선고받은 형기를 모두 합하면 무려 32년이다. 그가 만기복역을 마칠때 쯤 교도소에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2차례 복역을 통해 충분히 반성했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일반적 성관계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고, 모르는 사람을 범하려는 충동이 다시 그를 지배했다. 세 번째 잘못을 저지르던 순간 B는 자신의 처지와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모두 잊었다.
“사람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사람다운 행실을 못했다. 짐승, 쓰레기 짓이었다.” 당시 그에겐 7년이나 복역을 뒷바라지했던 약혼녀가 있었다. 약혼녀는 자신을 놔두고 성범죄를 저지른 B의 행동에 경악했고, 울면서 그를 떠났다. 회상하는 B의 눈은 흐려졌고, 목소리는 떨렸다.
앞서 두 차례의 죗값을 일반 교도소에서 치렀던 그는 이번에는 치료감호소를 택했다. 자신이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감춰진 성욕구가 무섭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다가도 밤늦은 시간, 여성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장소에선 ‘또 다른 내’가 나와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문제가 성도착증임을 알게 됐다. 정상적으로 절제, 통제가 안 돼 결국 스스로 화학적 거세를 택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성적으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이다. 약물 치료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B는 아직 약물요법 대상자가 많지 않아 누적된 자료가 없으며, 부작용 우려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남들이 나를 동물원이나 실험실의 원숭이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이 망가진 사람이 치료를 통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나섰다.”
B는 화학적 거세를 처벌이나 억압이 아닌, 사회로 돌아가게 해줄 유일한 통로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자발찌와 화학적 요법 등은 성범죄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성년자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더 강력한 조치가 있다면 병행되어야 한다.”
그는 이곳 병동에서 실장을 맡고 있다. “나이 어린 친구 중에서는 (성범죄의) 심각성을 모르는 이들도 있다. 나만 해도 내가 이렇게 망가질 줄 몰랐다. ‘너희도 나처럼 될 수 있다. 나처럼 한심한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도와주는 사람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려라’라고 말한다.”
‘화학적 거세’에 대한 오해들
화학적 거세는 성범죄자의 성욕을 억제해 직접적으로 재범을 방지하는 조치다. ‘범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잡힌다’는 심리적 압박을 줘서 간접적으로 재범을 막는 전자발찌보다 더 강력하다.
‘화학적 거세’ 하면 화학적 요법을 통해 성범죄자들을 진짜 거세시키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약물 성분이 떨어지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물리적 거세와는 다르다. 덴마크가 1929년 화학적 거세 관련 절차를 규정한 법을 최초로 만들었다. 이어 노르웨이의 단종법, 스웨덴의 거세법 등이 나왔는데, 현재 물리적 거세는 사실상 사라졌고 화학적 거세가 주를 이룬다. ‘거세’라는 자극적 포장을 벗기면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치료 행위만 남는다.
우리나라의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은 ‘16세 미만에게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사람’ 중 재범 위험이 높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 감정이 나온 이들에게 강제적으로 집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집행시기는 출소 2개월 전으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길태와 복역기간이 10년 이상 남은 조두순은 아직 대상자가 아니다.
화학적 거세의 실제 과정은 간단하다. ‘GnRH 길항제’ 주사를 한 달에 한 번 맞는 것이 전부다. 과거 해외에선 남성성을 억제하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썼는데, 이는 피의자의 가슴과 엉덩이를 커지게 하는 등 여성화 부작용이 컸다.
GnRH 길항제는 성충동을 일으키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촉진하는 약물이다. 길항제가 신체에 들어가면 신체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테스토스테론의 생성을 중단해버린다. 그래서 혈중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정상 수준인 2.25∼9.72ng/㎖에서 거세 수준인 0.5ng/㎖로 떨어진다. 치료 전 각각 4.02ng/㎖, 7.71ng/㎖였던 A와 B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현재 0.4ng/㎖이하로 유지되고 있다. 일부 대상자는 의지와 상관없이 야한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침투환상’을 겪었는데 치료 이후 환상이 완화됐다.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중단되면 근위축, 골밀도 감소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다만 이 약물은 전립선암 치료제로 쓰이기 때문에 임상적 경험이 축적됐고, 약물 부작용 대처도 쉬운 편이다.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 재범률에 미치는 효과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연세대 의대 최영득 교수팀의 법무부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성범죄자의 재범률은 60∼84%에 달하지만 고환 절제술을 했을 경우 재범률이 2.5∼7.5%로 급감한다. GnRH 길항제는 고환 절제술에 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우 국립법무병원장(치료감호소장)은 “아직 사례가 적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상황을 볼 때 치료효과가 있는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적 거세를 해 봐야 약물을 중단하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화학 요법을 중단하는 순간 억눌렸던 호르몬 분비가 더 많아지면서 또 다른 범죄를 낳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하지만 약물치료와 함께 인성, 심리치료를 병행하면 효과가 더 좋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법무병원 인성치료재활센터의 노일석 사무관은 “약물이 성충동을 억제하기 때문에 일탈적 성적 사고의 부정적 영향이 차단되고 환자들이 심리치료에 더 집중하게 된다. 심리치료에 더 집중하면서 ‘나도 좋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전체적인 성과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만약 치료명령을 받은 자가 상쇄약물 투약 등의 방법으로 치료효과를 없앤다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더 필요한 노력들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소아기호, 노출증 등 성적인 문제를 겪는 이들이 성범죄자가 되기 전에 스스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성범죄자들은 자신을 그저 이상한 성적 취향을 가졌을 뿐인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모를 정도다. 노출증 환자 C(27)는 “내게 무슨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쾌감을 느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관련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B는 “여기 와서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 문제를 미리 알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이 지경은 안 되지 않았을까”라고 후회했다.
A와 B, C 등은 자신의 삐뚤어진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를 선택했다. 이들은 범죄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마음속 악마와 싸우며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불쌍한 인간들이다. 이들이 삐뚤어진 성충동을 억제하도록 돕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를 지키는 일이다.
공주=글 김도훈 기자, 사진=윤여홍 선임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