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in&out] 한국에 반해 식객 되다… 국내 케이블TV 요리대결 출전 日 모델·배우 다카키 리나
입력 2011-08-25 18:24
일본 여배우 다카키 리나(32)씨는 고등학생 시절에 우연히 한국의 대중가요를 들은 뒤 노랫말의 의미를 알고 싶어 혼자 한국말을 익혔다. 이후 한국 음식에 끌려 집에서도 곧잘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 주변의 권유로 한국의 케이블 TV가 주최한 요리경연 프로그램(Q-TV의 ‘예스 쉐프 시즌 2’)에 참가했다.
1000명이 넘는 지원자 중에는 프로 요리사들이 적지 않았는데 다카키씨는 당당히 12명이 겨루는 본선에 올랐다. 그녀가 요리를 배운 건 서울 강남의 학원을 두 달 다닌 게 전부였다. 본선에서도 1차를 통과했다. 6명이 겨루는 준준결승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음식을 만들라는 주문을 받고 잡채를 넣은 곱창을 선보였다. 심사위원 에드워드 권으로부터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칭찬을 받았다. 비록 최종전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선전은 인상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허접스럽게 요리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에드워드 권)를 받은 그녀를 지난 22일 서울 인사동의 한식당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해물파전과 갈비찜, 아욱된장국, 취나물 등이 밥상에 올랐다.
-한국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가 뭔가요.
“사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 몰랐어요. 한국 친구들이 나가보라고 추천했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하거든요. 도전한다는 심정으로 나갔죠. (지원자 중에) 명문 요리학교 출신도 있고 쟁쟁하더라구요. 전 가정식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예선 통과도 못할 줄 알았어요.”
-유일한 외국인이라서 봐준 게 아닐까요. 어떤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일본배우라서 봐줬는지는 심사위원이 아니어서 모르겠어요. 첫 미션 때 제가 고로케(다진 고기나 채소를 짓이긴 감자로 싼 뒤 원반 모양으로 만들어 튀긴 음식으로 크로켓의 일본식 용어)를 만들었는데 재료를 딱 1인분어치만 가져와서 썼어요. 어떤 분은 1인분 음식을 만드는데 감자를 3개나 쓰는 경우를 봤어요. 저는 재료가 있다고 막 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분은 떨어지고 저는 올라갔어요. 제 요리 실력이 결코 그분보다 더 뛰어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경연을 하면서 만들어 본 요리 중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국 전통 식재료를 사용해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라는 미션이었는데 식재료가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게 아니었어요. 돼지꼬리, 번데기, 개불, 돼지껍데기, 곱창, 닭발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 번데기는 정말 별로였어요. 대신 곱창을 좋아해요. 그래서 곱창을 골랐죠. 거기에 잡채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잡채 양념을 강하게 하면 (곱창) 냄새가 없어져서 괜찮을 거라고 봤죠.”
다카키씨의 곱창 잡채는 속재료가 빠져나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에드워드 권은 탈락시키면서도 그녀의 아이디어와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문제는 없었어요?.
“의사소통이 어려웠어요. 팀으로 경쟁하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말을 못 알아 듣는 거예요. 제가 한국어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식재료나 요리 방법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체를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는데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체가 뭐야? 사람이야?’ 저는 채씨인 줄 생각했거든요.(웃음) 또 ‘다지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엉뚱하게 채썰기를 했죠. 답답해하는 팀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너무 미안해요. 이제는 많이 알아요.”
-오늘 상에 나온 음식은 알겠어요?
“그럼요. 이건 갈비찜이구요. 제가 좋아하는 두부네요. (맛을 보더니) 순두부에 미역, 식초를 곁들인 것 같은데요. 나물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된장국은 좋아하는데 어떻게 만드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요리는 언제부터 했나요.
“제 고향은 시즈오카예요. 고교 졸업 후 모델 활동하느라 도쿄에 있는 친오빠 집에 있었죠. 오빠가 출근한 뒤 혼자서 이것저것 요리해봤어요. 고로케, 야키니쿠(숯불구이), 야사이이타메(야채볶음), 오므라이스 등 주로 간편하면서도 쉽게 만드는 가정식 요리를 좋아했어요.”
-한국 요리는 어디서 배웠나요.
“한국에 관심이 많으니까 일본 요리책에 나오는 조리법을 읽어 보고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만들어봤어요. 그러다 작년에 서울 강남역에 있는 요리학원에 2개월 다니면서 배추 겉절이, 강된장 만드는 법을 배웠죠. 개인적으로는 매운 주꾸미 볶음을 제일 좋아해요. 강된장은 밥에 쓱쓱 비벼 먹어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보완해야 할 점이 뭐가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무슨 뜻인지. (잠시 통역의 설명을 듣더니) 아, 알겠어요. 고추장의 매운 맛을 몇 단계로 나누면 어떨까요. 한국음식의 매력은 역시 매운 맛이죠. 일본 음식에 간장이 없으면 안 되듯이 한국은 고추장이거든요. 매운 음식을 뺀다면 한국 음식 중에서 먹을 게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제 친구 중에서는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래서 매운 고추장, 좀 덜 매운 고추장, 부드러운 고추장… 이렇게 여러 종류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게 해법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카키씨의 지적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식의 세계화 전략과 일치한다. 사실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 및 산업화를 위해 매운 맛과 짠 맛의 등급화를 이뤄 다양한 수요층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언제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졌나요.
“저는 일본에서 15살부터 모델을 했어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죠. 그런데 어느 날 한국을 다녀온 친구가 CD를 사왔는데 그게 DJ DOC의 앨범이었죠. ‘겨울이야기’라는 노래였는데 ‘아, 이런 노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요. 그게 1997년이었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그때부터 한글을 독학했어요. 마침 그 해에 한국에서 화보 촬영 제의가 왔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그녀는 1998년 후지TV의 ‘Not So 퍼펙트 러브’라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변신했다. 이후 인기드라마 ‘가바치타레(히로시마 사투리로 불평불만)’와 영화 ‘보탄도우로(모란 초롱)’, ‘워터스’ 등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2007년에는 국내 TV에 방영된 기아자동차의 CF에 배우 김명민과 함께 등장한 적도 있다.
-한국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제가 한국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한류’라는 말이 생기기 한참 전이었어요.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끌렸죠. 그래서 2004년에는 이화여대서 3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했어요. 제가 97년부터 독학했던 한국어보다 이대에서 3개월 배우는 동안 훨씬 늘었어요. 역시 언어는 현장에서 살면서 배워야 해요.(웃음)”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한국의 반일 분위기 등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부모님은 제가 일본에서 한국을 왕래하면서 활동하길 원했어요. 지금은 저를 이해해주세요. 얼마 전 일본에 놀러갔는데 일주일 정도 있으니까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웃음) 부모님이 반대했어도 아마 전 한국에서 살았을 거예요. 제가 (한국을)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지금도 많아요. 그러나 제가 하고 싶은 걸 해야죠.”
그녀는 2010년 3월부터 서울 잠원동에서 ‘아는 한국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한국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면 어떤 요리를 만들 생각이에요.
“한국 분을요? 어렵네요. 약간 일본 음식과 비슷한 한국요리를 만들면 어떨까요. 한국에는 다 같이 모여 먹는 음식문화가 있으니까 전골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요. 일본말로는 요세나베(모듬 냄비전골)나 스모선수들이 먹는 찬코나베 같은 것에 고추장과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서 매콤한 맛을 내는 거죠. 고기나 해물을 넣고 칠리소스를 쓰면 어떨까요.”
-앞으로 배우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요.
“냉면 육수를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냉면집에서 나오는 육수 있죠? 비빔냉면 먹기 전에 나오는 육수요. 어디인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한번은 냉면집에 가서 육수를 몇 컵이나 마셨는지 몰라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 한 뒤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길거리에서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생겼어요. 다른 프로그램 출연 제의도 조금씩 오구요. 만일 요리 프로그램 제의가 온다면 적극 응할 생각이에요. 요리를 좋아하고 한국음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잖아요.”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