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로 이름난 14개 섬을 찾아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입력 2011-08-25 18:20
15∼16세기 조선조에는 벼슬아치 4명 가운데 1명꼴로 유배를 당했다. 정쟁이 심해질수록 정적에 대한 미움과 탄압은 더욱 극심해져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추가 조치까지 적용됐다. 위리안치는 유배객이 머무는 집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유배객을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짧게는 20여일부터 길게는 27년까지 절해고도에 머문 기간이 달랐듯 유배객들의 삶도 제각각이었다. 유배에서 돌아와 높은 벼슬을 한 이가 있는가 하면 유배지에서 한탄 속에 숨을 거둔 선비도 있었다. 위도, 교동도, 진도, 백령도 등 절해고도로 이름난 14개 섬을 찾아 유배객들의 삶의 궤적을 좇았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