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감 추적하던 본능따라 우리는 달린다

입력 2011-08-25 18:19


한때 서점가 최고 유행어는 ‘걷기’였다. 2003년 출간된 프랑스 전직 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도보 여행기 ‘나는 걷는다’(효형출판)를 필두로 지난 8년간 출판가에는 걷기 예찬, 걷기 좋은 길, 도시 걷기, 숲길 걷기, 오지 걷기, 운전 안하고 걷기 등 장르와 분야, 주제도 다양한 걷기 책이 쏟아졌다. 걷기 열풍과 비교하면, 달리기 인기는 미약했다. 그나마 주목받은 책이라면 요슈카 피셔 독일 전 외무장관이 달리기로 2년 만에 37㎏를 감량한 사연을 담은 ‘나는 달린다’(궁리) 정도였다.

27일 개막하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달리기의 열세를 만회할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 달리기를 소재로 한 책들이 최근 서점가에 깔리고 있다.

대구대회를 즐기는 데 관심 있는 독자라면 최근 나온 김화성의 ‘자유와 황홀, 육상’(알렙)이 적당하다. 책은 ‘인간은 왜 달리는가’라는 원초적 질문에서 시작한다. ‘사냥감 추적이 인간의 본능 중 하나’라는 생물학자의 과학적 설명, ‘달리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달린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설적 달리기론 등 인문학적 고찰부터 20세기를 주름잡은 장거리와 단거리 선수들에 대한 에피소드, 종목별 규칙까지 망라했다.

좀 더 깊이 있는 달리기 인문학을 접하고 싶다면 올봄 나온 토르 고타스의 ‘러닝’(책세상)을, 달리는 인간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는 프랑스 소설가 장 에슈노즈의 ‘달리기’(열린책들)를 골라보는 게 좋겠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인문학 서적인 ‘러닝’은 달리기의 역사라기보다는 달리기를 통해 본 세계사라는 설명이 어울리는 책이다. 북유럽 전설과 문학 속에 등장하는 달리기, 17∼18세기 영국 청교도주의에 반발해 유행했다는 나체 경주, 왕의 메신저로 존경받은 잉카제국 전령들 등 얘깃거리가 인류사의 부침과 함께 소개된다.

소설 ‘달리기’는 달리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실존 인물 에밀 자토페크. 체코슬로바키아 육상대표로 1948, 52, 56년 3회에 걸쳐 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당대 최고의 장거리 선수였다. 소설은 신발공장 견습공 에밀이 전설적 육상선수로 각광받다가 민주화 운동을 지지한 벌로 광산 노동자로 전락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달리는 모습에 대한 문학적 묘사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재미는 덤. 대구대회에 맞춰 출판사 표지를 새로 만들어 다시 내놓았다.

꽤 오래 전 나와 잊혀진 책으로는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한문화)가 있다. 달리기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에 대해, 달리는 방법이 아니라 달리는 의미에 대해 말한다. 놀기, 발견하기, 잃어버리기, 치유하기 등 달리기와 삶이 만나는 지점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