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현대 과학의 아버지

입력 2011-08-25 18:17


다빈치처럼 과학하라 / 프리초프 카프라 지음·강주헌 옮김 / 김영사

그림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머리가 좋다. 예외도 있겠지만 통념상 그렇다는 것이다. 그림은 시각을 통해 사물에 대한 인지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림은 관찰의 결과이다.

“회화는 자연의 모든 형태를 포용한다”고 말한 이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이다. 이 말은 레오나르도의 과학과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한데 그는 회화에 대한 자신의 글을 모아둔 ‘회화론’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회화학은 몸의 표면을 덮는 모든 색, 그 표면을 이루는 몸의 형태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 철학적이고 섬세한 사색이 더해진 회화는 모든 형태를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학문, 자연의 적자(嫡子)가 될 수 있다. 회화는 자연에서 잉태되기 때문이다.”(17쪽)

이렇게 서두를 꺼낸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 과학자이자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1975)을 펴내며 서양과학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흔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프리초프 카프라 박사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갈릴레오를 현대 과학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경향에 반기를 들면서 갈릴레오보다 100년 앞선 레오나르도야말로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레오나르도는 요즘 과학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시스템 사상가’ 혹은 예술과 과학을 통합한 ‘유니버설 맨’이다.

유기체 과학의 선구자인 레오나르도의 통합적 인지 능력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인데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레오나르도가 남긴 6000여 쪽의 공책에서 찾아내 제시한다.

“레오나르도는 눈동자와 수정체를 지나 시신경까지, 요즘 신경학자들에게 제3의 뇌실로 알려진 부분까지 시각의 완벽한 경로를 정교한 해부도로 처음 그려냈다. 그는 제3의 뇌실을 영혼의 보금자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곳에 모든 감각인상이 집결된다. 레오나르도의 생각은 인지과학자들이 인지(cognition)라 칭하는 것과 무척 유사하다.”(24쪽)

레오나르도는 실제로 화가의 눈에 비친 모습에서 시작해 그것의 내재적 속성에 대한 연구로 나아갔다. 대우주, 즉 자연계에서 그가 가장 관심을 가진 연구 대상은 물과 공기의 운동, 지구의 지질학적 구조와 변형, 식물의 다양한 형태와 생장 패턴이었다.

한편 소우주에서의 주요 관심사는 사람의 몸이었다. 그는 인체의 아름다움과 비율을 연구했고, 인체 운동을 역학적으로 접근했으며, 인체의 움직임과 다른 동물의 움직임 특히 새의 비행을 비교했다. 레오나르도가 화가, 과학자, 생태학자, 건축가, 사상가라는 다양한 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다는 건 그가 엄청난 양의 정보를 통일된 총체로 기억하는 능력을 가진 천재 중 천재였음을 반증한다.

해부도를 그리면서 갈고 닦은 혁신적인 기법은 기계 장치를 그릴 때도 적용됐다. 그는 인체의 해부도를 그리면서 인체를 재구축한 설계자이기도 했다. 설계자로서의 자질은 건축분야에서도 빛을 발한다. 실제로 그는 저택과 궁전과 성당의 설계도를 무수히 그렸다. 예컨대 성당의 둥근 지붕은 인간의 두개골에 비교했고, 둥근 천장의 아치는 흉곽에 비유했다. 호흡의 들숨과 날숨, 피를 통한 영양분과 노폐물의 운반 등 인체의 신진대사는 건축물의 신진대사로 적용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어떤 현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패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각 현상을 서로 연계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체 비율에 대한 연구는 르네상스 건축물 비율에 그대로 적용됐다. 근육과 뼈는 톱니바퀴와 지렛대에 비교해 연구했으며 동물의 생리적 구조는 공학적 구조와 연계했다. 물의 파동 패턴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는 공기의 흐름에서 유사한 패턴을 찾아냈다. 이를 근거로 소리의 성격과 음악이론을 연구했고, 악기의 구조까지 파고들었다.

이 모든 것이 그림에서 시작됐으니 그에게 그림은 손재주 차원을 넘어 정신적 활동이며 과학이었다. 사물이나 대상을 장악하는 데 그림처럼 좋은 게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레오나르도식 인지능력인 총체성을 갖고 싶다면 먼저 그림을 그려보아야 한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