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투표] 내홍에 정국주도권까지 내줄 판… 與 ‘더블딥’ 수렁
입력 2011-08-25 00:57
여권이 다시 암초에 부닥쳤다.
‘천당 밑 분당’이라 불릴 정도로 여권의 전통적 텃밭이던 4·27 경기도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패하며 위기에 휩싸였던 ‘악몽’이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로 재연되는 분위기다. 지도부를 교체하고 ‘반값 등록금’ 등 친서민 정책을 펴면서 서서히 회복해 가던 정국 주도권도 야권에 내줘야 할 형편에 몰리게 된 것이다.
당장 24일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한나라당은 내홍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친박근혜계와 소장파들은 중앙당 차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 홍준표 대표를 비판하고 나설 수 있다. 반면 친이명박계는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친박계와 소장파에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친이계 한 의원은 “비록 투표율이 33.3%를 넘기지 못했지만 오 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 때 받았던 득표율보다 투표율이 높았던 만큼 당 차원의 총력 지원이 있었으면 해볼만한 승부였다”며 “책임론은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인사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내에선 “오세훈 개인의 전쟁이었을 뿐”이라며 투표 결과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홍준표 대표는 “당이 주도하는 투표가 아니라 당이 지원하는 투표에 불과했다”며 주민투표 후폭풍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홍 대표는 투표 종료 직후에도 민주당의 방해공작이 없었다면 ‘오세훈 정책’이 압도적으로 옳았다는 것이 입증됐을 것이라며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특히 그는 “투표율이 25%를 넘겨 사실상 이긴 것”이라며 “내년 총선에서 서울에서 25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청신호”라는 해석도 내놨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정권 차원의 ‘레임덕’ 현실화 우려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사실상 주민투표를 측면 지원한 상황에서 선거 패배의 불똥이 청와대로 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또 차기 대선 유력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주민투표와 거리를 둔 만큼 별다른 상처를 입을 게 없다는 관측이 있지만, 여권 전체의 위기로 번질 경우 결국 유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다 오 시장의 사퇴로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 역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민심이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여권의 걱정을 키우고 있다. 이날 저녁 홍 대표가 임태희 대통령실장, 김효재 정무수석과 함께 오 시장을 긴급히 만나 거취 문제를 당과 협의해 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당 핵심 관계자는 “4인 회동에서 오 시장이 향후 행보를 당과 긴밀히 협의해 결정키로 했다”고 말했다. 독단적으로 시장직을 던지지 않게 하겠다는 얘기다.
한편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 전용기 안에서 투표 결과를 보고받고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지난 지방선거 득표율(전체 유권자의 17.8%)과 비교하면 25.7%는 상징적 의미가 있고, 상당히 선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민주주의 의사 결정의 최종 단계인 투표를 해놓고도 개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