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투표] 패장된 오세훈, 제 덫에 치인 ‘식물 시장’… 대권 시계도 멈췄다
입력 2011-08-25 01:00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 시계’가 멈춰섰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4일 유효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 하면서 폐기됐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에 이어 시장직을 거는 배수진까지 치고 전쟁에 나섰지만 결국 패장이 됐다.
그간 그의 정치인생은 순탄했고 운이 따랐다. 1990년대 초반, 잘 생긴 외모에 환경 전문 변호사와 방송 진행자로 활약하며 깨끗한 이미지와 대중적 인기를 동시에 얻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서울 강남을 공천을 받아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고, 당 개혁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 대표를 맡아 활약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돈 안 쓰는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겠다며 ‘오세훈 선거법’을 만들었다.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지만 불출마 선언을 한 뒤 정계를 떠났다.
그리고 2년 뒤인 2006년 4월, 열린우리당 강금실 후보를 꺾을 필승 카드로 부각되면서 당내 경선을 1주일 남기고 여의도로 복귀했다. 최연소 서울시장으로 승승장구했고 지난해 6월 재선에 도전,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첫 임기 때와 달리 ‘여소야대’ 서울시의회가 출범하면서 시련은 시작됐고 급기야 주민투표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10월 보궐선거를 피하기 위해 가급적 그의 사퇴를 뒤로 미루려는 분위기이지만 시장직 사퇴는 시간문제다. 시장직을 떠나면 오 시장은 한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지낼 것으로 보인다. 17대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오 시장은 법무법인 지성 변호사로 지내는 등 여의도와 멀찍이 떨어져 지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연인으로 돌아가 외국에 나가는 등 조용한 행보를 할 듯하다.
그의 정치 시계는 언제쯤 다시 움직일까. 일단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한 서울 지역 의원은 “총선 불출마 때는 강남 출마를 포기하며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양새라 당에 큰 도움이 됐지만 이번에는 상의도 없이 당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라며 “동료들로부터 위로와 동정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과정에서 고집불통, 이기주의자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5년 시정의 트레이드마크가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로 남게 됐다는 것도 뼈아픈 대목이다.
내년 4월 19대 총선 출마설이 나오지만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한 측근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무슨 총선 출마냐”고 했다. 차기 대선도 물 건너간 분위기다. 이미 불출마 선언을 한 데다 주민투표 패배 때문에 그가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어졌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오 시장이 보수의 토양으로 있으면 존재가치가 있겠지만 지금 다시 꽃 피워보겠다고 생각하고 나서면 하나도 돌아갈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얻은 점도 많다. 복지 포퓰리즘을 온몸으로 막아서며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동안 당내지지 세력이 약했던 오 시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정통 보수 세력의 지지를 확보했다. 정치는 생물인 데다 오 시장은 아직 젊기 때문에 그에게 정치적 기회가 한번 더 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무상, 무상 하다 보면 다음 번 대선 때는 재정건전성과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대중들이 여기에 맞섰던 오 시장을 찾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 정국에서 여권 내부에 예상치 못했던 ‘격변’이 생길 경우 ‘오세훈 대안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나래 김경택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