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투표] 野 ‘투표거부 운동’ 주효… 與 적전분열도 거들어

입력 2011-08-24 22:38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투표함조차 열지 못한 배경에는 투표 거부운동을 이끌어낸 야권의 전략이 성공했다는 평가다. 축구로 치면 오프사이드 트랩을 사용해 득점 자체를 무효화한 셈이다. 여권 내부 혼선도 자멸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최종 투표율 25.7% ‘저조’=오후 8시 마감된 투표율은 25.7%라는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6·2 서울시장 선거의 투표율인 53.9%보다 28.2% 포인트나 낮고, 4월 27일 치러진 서울 중구청장 재선거 투표율 31.4%에도 한참 못 미쳤다.

오전 6시 시작된 주민투표 투표율은 투표 시작 5시간 뒤인 오전 11시 10%대를 넘었다. 그러나 이후 투표율은 시간당 1∼2% 상승하는 데 그쳐 최종 투표율은 겨우 25%에 턱걸이했다.

구별 투표율 편차가 뚜렷한 점이 특징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텃밭으로 통하는 강남3구(서초·강남·송파) 투표율은 다른 지역을 압도했다. 이 중 서초구 투표율이 36.2%로 가장 높았다. 강남구와 송파구도 각각 35.4%, 30.6%로 30%를 넘었다. 타워팰리스 내에 있는 강남구 도곡2동 제4투표소에서는 유권자 3678명 중 2219명이 투표해 60.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6·2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 시장을 당선시켰던 중산층 보수 성향 시민들이 투표장으로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강남3구와 강동 용산 양천 노원 등 7개 구 투표율이 서울시 평균 투표율보다 높았다. 반면 금천구는 20.2%로 최저를 기록했다.

◇투표 거부운동이 승패 갈랐다=이번 투표에서 오 시장이 서울시민에게 물은 것은 ‘전면적 무상급식이냐 단계적 무상급식이냐’였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권은 투표 거부운동을 통해 투표 구도를 ‘투표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바꿔 버렸다. 민주당이 투표를 통해 이기려면 야권 성향의 표가 결집하면서 투표율이 60%는 돼야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민주당 강희용 주민투표대책위원회 전략본부장은 “주민투표의 불법·부당성을 널리 알려 공감대를 얻고, 이를 투표 거부운동으로 발전시킨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5당은 진보적 시민단체와 함께 ‘나쁜투표거부운동본부’를 만들어 적극적인 투표 거부운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투표 안 하기=비민주적’이라는 거부감을 줄이는 대신 투표 거부의 정당성을 높였다. 전략의 성패를 뛰어넘어 애초부터 무상급식에 대한 서울시민의 기대가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선숙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은 “우리가 대응을 잘했다기보다 서울시민의 현명한 승리였다”고 진단했다.

◇여권 내부의 불협화음=한나라당이 오 시장의 ‘승부수’에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도 한계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단계적 무상급식 방안에 대한 당론을 채택하지 못하고, 보수층 결집에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오 시장이 당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장직을 거는 등 독단적 행동을 벌인 것을 놓고 ‘해당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친박근혜계와 소장파가 주민투표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가 투표 전날 “서울시민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한 것에 대해 오 시장 주변에서는 섭섭하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한 친박계 의원은 “서울 지역 의원 40명 중 친박계는 4명에 불과하고, 친박계 의원들의 지역구 투표율이 높게 나오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엄기영 노용택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