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투표] 청년층 vs 장·노년층-강남 vs 非강남… 표심, 둘로 쪼개졌다
입력 2011-08-24 22:38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4일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자 투표를 거부한 시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투표 참여자들은 ‘과잉복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날 투표는 연령과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였다. 나이 든 유권자가 젊은이보다 훨씬 많았고, 강남지역 투표소가 비강남권보다 북적였다.
◇주민투표 무산에 희비 교차=투표를 거부한 대학원생 신모(25·여)씨는 “오후 5시부터 ‘퇴근 투표족’이 늘어난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을 졸였는데 개표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투표 거부 1인 시위를 했던 김종민(41)씨는 “아이들에게 빈부의 벽을 만드는 투표에 수백억원의 예산을 사용한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반면 투표에 참여했던 시민들은 개표조차 못한 것에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출산했다는 이모(32)씨는 “일찍 일어나 투표하고 출근했는데 헛수고한 것 같아 답답하다”며 “나에겐 전면 무상급식보다 워킹맘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무상보육 실시가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1시간 일찍 퇴근해 투표한 회사원 염모(34·여)씨는 “유럽의 많은 나라가 과잉복지로 무너지는 마당에 전철을 밟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세대·지역별 투표 양극화=오전시간대 대치동 투표소는 노년층뿐 아니라 부모와 함께 온 20대 자녀, 30∼40대 주부들로 가득했다. 대치동, 서초동, 잠실 등 강남지역 투표소에선 유권자들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서초동에 사는 주부 정모(58)씨는 “우리 아이들이 거지근성이 생길까 걱정되고 공짜로 주다 보면 밥이 부실해질 것 같아 나왔다”고 말했다.
반면 비강남권 투표소는 대체로 한산했다. 대학동 1투표소 관계자는 “오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찾아왔을 뿐 젊은 사람은 통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운·효자동 1투표소에서 만난 김모(50·여)씨는 “오세훈 시장의 결단에 영향을 받아 나왔다”면서 “시장직을 건 만큼 시민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표용지에 ‘찬성·반대’ 대신 서울시와 시교육청의 무상급식 안을 설명해 놓은 탓에 내용을 잘 모른 채 투표소에 나왔다가 당황해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연출됐다. 종로구의 한 투표소를 찾은 60대 여성은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위쪽과 아래쪽 중 어느 쪽이 여당이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하루 종일 투표율에 촉각=투표 여부와 상관없이 주요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1위가 줄곧 ‘투표율’이었을 정도로 투표율 추이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투표율이 33.3%를 넘느냐 마느냐에 오 시장의 명운이 걸리면서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민모(35)씨는 “서울시민이 아니어서 투표권도 없고 투표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이번 주민투표의 관전 포인트는 ‘투표율’이라 재미있다”며 “일하는 틈틈이 포털 사이트에 뜨는 투표율 기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표 참여가 전면 무상급식 반대로 여겨질 정도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에 투표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서로 투표 여부를 묻지 않는 풍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투표를 하지 않은 정모(34)씨는 “소신에 따라 투표를 거부했지만 아무래도 나이 많은 윗분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싶어 투표 얘기를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승욱 이용상 진삼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