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치매정책 유감

입력 2011-08-24 17:58


기자의 할아버지는 95세로 치매를 앓고 있다. 병 수발은 전적으로 72세인 기자의 아버지와 67세인 어머니 몫이다. 매일 용변 실수한 옷가지며 이불을 빨고 식사를 챙기느라 부모님의 주름살은 날로 느는 것 같다. 요즘엔 새벽에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나가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치매 가정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여겼는데, 당장 현실로 닥치니 막막했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의 고생을 두고 볼 순 없었다. 고민 끝에 누나, 동생들과 의논해 노인요양병원에 할아버지를 모시자고 설득했다. 근데 두 노인은 극구 반대했다. 시골에 몇 안 되는 노인요양병원을 둘러봤는데 영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비싼 간병비만큼 서비스는 맘에 안 든다고 했다. 자식들이 돈을 모아 매월 보내겠다고 해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별다른 벌이가 없는 농촌에서 적게는 월 75만원(공동간병), 많게는 180만원(개인간병)인 간병비가 걱정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짐은 지우기 싫다며 고생을 자처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80세 노인의 사정은 더 딱했다. 그는 3년 전부터 홀로 살고 있는 치매 누이(87)를 돌보고 있다. 누이가 자녀가 없어 유일한 혈육인 자신이 수발을 한다고 했다. 누이는 치매 발병 후 1년간 약 복용으로 그럭저럭 버텼으나 증상이 심해져 지난해 겨울부터 병원을 네 차례 옮기며 입원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간병비 때문에 요즘은 퇴원해 집에서 보살핀다. 의료수급 1종 대상자인 노인의 누이는 정부로부터 매월 생활안정자금 30만∼40만원을 지원받지만 입원치료를 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내 나이가 80인데 벌이도 없는 상황에서 소싯적 벌어놓은 돈으로 누이 뒷바라지하는 게 벅차다”는 노인의 하소연이 귓가에 맴돈다.

입원치료가 필요한 치매 환자에게 병원 문턱은 높다. 비싼 간병비 때문이다. 진료비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만 간병비는 보험이 안돼 전액 환자나 가족이 내야 한다. 이는 장기요양보험 대상자로 선정돼 노인요양시설에 들어가는 경우에도 똑 같이 적용된다.

치매 환자가 많이 찾는 재활 또는 아급성기(급성과 만성의 중간 성질) 병원의 경우 본인이 부담해야 할 진료비는 월평균 50만∼80만원. 하지만 최고 180만원에 이르는 간병비는 건강보험 대상자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 치매 환자는 1∼2개월이 아닌 1년 이상 장기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진료비와 간병비를 합쳐 연평균 2000만원 정도 든다.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은 간병비를 부담할 여력이 없어 병원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전체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시행하기에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크다면 의료수급권자나 차상위계층 등을 우선 지원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치매 환자의 ‘병원 유목생활’에 대한 해결책도 절실하다. 치매 환자들은 3개월 이상 입원이 어려워 석 달마다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3개월 이상 입원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입원료를 삭감해 병원 측이 퇴원을 종용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환자들은 한 병원에서 적응하기 힘든 만큼 6개월 정도는 입원치료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 치매관리법 제정·공포에 따라 치매 관리에 국가 개입을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년 2월부터 국가치매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5년마다 치매관리 종합 계획을 수립해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중앙치매센터를 지정하고, 보건소에 치매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연구·검진·의료비 지원 사업을 실시하는 등 많은 대책이 포함됐다. 하지만 정작 환자나 가족의 피부에 와 닿는,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정책은 눈에 띄지 않았다. 수없이 나온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라 체감도 높은 치매 정책이 필요하다. 치매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탁한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