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펙 젊은 그들, 왜 NGO로 갔을까?… 국제구호단체의 청년들
입력 2011-08-24 15:01
[쿠키 톡톡] 미스 전북과 대한항공 승무원, 구글(Google) 마케팅 담당자는 왜 선망의 직장과 남다른 이력을 버리고 국제구호단체로 몰려갔을까. 세무사, MBA(경영학 석사) 소지자, 금융권 종사자가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입신양명이나 풍요로운 생활과 거리가 먼 비정부기구(NGO)의 문을 두드린 까닭은 뭘까.
국제NGO에 인재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회복지 전공자가 주를 이루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국제개발과 국제구호·홍보·재무·인사 등 각 분야 전문인력이 지원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국제NGO 관계자들은 “지원자들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졌다”고 말한다.
지원자 가운데 명문대 출신과 석·박사는 물론 유학파가 상당수다. 전공 분야도 다양하다. 왜 옮기려는 걸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경력을 보유한 지원자도 많다. 이들 중 다수가 고배를 마실 만큼 입사 경쟁은 치열하다. 국제NGO는 화려한 스펙(조건)과 안정된 직장, 탄탄한 복리후생을 등지고 도전할 만큼 매력적인 곳인가. 눈길 가는 이력을 갖추고 국제구호단체에서 활약하는 10명의 이야기를 24일 들어봤다.
이웃의 비극
독하게 공부해 서울대에 들어갈 때 성상미(31·여)씨가 생각한 직업은 기자였다. 국어국문학과 3학년이던 2003년 우즈베키스탄 방문은 진로를 바꾸게 했다. 그곳 주민은 가난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가장들이 외국 노동자로 나가면서 가족은 해체됐다. 청년들은 “나라에 미래가 없다”며 절망했다.
성씨는 2009년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협력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부출연기관인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와 외교통상부에서 인턴을 하며 국제NGO의 영향을 실감했다. 지난해 10월 굿네이버스에 입사한 그는 “문제의 뿌리부터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단체 김지혜(30·여)씨는 2005년 대학 졸업 후에도 한동안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일반 기업은 구미가 안 당겼고 대학원에 가려니 이론에 치중한 전공은 내키지 않았다. 막연히 유학을 준비하던 그에게 지인이 캄보디아 자원봉사를 권했다. 갔다 오면 인생이 바뀔 것 같은 기분으로 떠났다.
10개월간 우물 개발과 지붕 보수를 도왔다. 수도와 전기가 없고 도로는 포장되지 않은 벽지였다. 김씨는 변화를 체감하며 고무됐다. “책상에서 일할 땐 잘 몰라요. 현장에선 사람들 삶이 변하는 게 보이거든요.” 그는 영국 맨체스터대 대학원에서 국제개발을 전공하고 2009년 굿네이버스에 입사했다.
장은창(32)씨는 대학생 때 이민자들의 현실을 마주하고 NGO에 뛰어들었다. 성균관대 건축학과에 다니던 그는 교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밖에 못 했지만 이방인으로 취급됐다. 일부는 불법체류자인 부모와 생이별했다.
대학을 졸업한 장씨는 호주 매쿼리대학에서 국제개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 NGO에서 번 돈과 신혼집 전세금을 털어 공부했다. 귀국 후 국민권익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채용됐지만 공직 사회는 숨막혔다. 장씨는 지난해 10월 굿네이버스로 옮기며 NGO로 돌아왔다.
이색 경력
키 172㎝의 권새롬(26·여)씨는 대학교 1학년이던 2004년 미스코리아의 지역 예선인 미스 전북 선발대회에서 ‘미’로 뽑혔다. 동네 미용실 원장이 권해서 나간 대회였다. 권씨는 2009년 굿네이버스에 지원할 때 이 이력을 밝히지 않았지만 대학 동문인 직원이 퍼뜨려 입사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권씨는 경기남부지부에서 아동학대 예방사업을 맡고 있다.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2∼4학년 때 전주지부에서 자원봉사를 했었다. 당시 아이들은 술 취한 아버지에게 구타당했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했다. 권씨는 “제 의견이 반영돼 아이들 환경이 개선되는 것을 보고 굿네이버스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계형(28·여)씨는 대학 4학년이던 2007년 친구 따라 지원했다가 대한항공 승무원이 됐다. 한동대에서 영어와 국제지역학을 전공한 그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벽이 높아 보여 망설였다. 그러다 원서를 넣은 항공사에 붙는 바람에 3년8개월의 승무원 생활이 시작됐다.
2, 3년차 때 퍼스트클래스·비즈니스석 승객을 맡았다. 대개 돈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들보다 빈민가 아동과 소수민족을 돕는 게 더 가치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승진을 5개월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사직서를 냈다. 진급하면 그만두지 못할 것 같았다. 퇴직 5일 만에 월드비전에 입사했다.
2006년 아제르바이잔에 신설된 한국 대사관에는 강현정(34·여)씨와 신임 대사뿐이었다. 강씨는 미국 유학 중 유엔 인턴을 하다 외교통상부에 정식으로 채용됐다. 그는 2000년 전주대 국제관계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국제기구 근무가 어릴 적 꿈이었다.
2년 뒤 대사관 업무가 자리를 잡았고 강씨는 사표를 냈다. 현장에서 저개발국을 도울 수 있는 기관은 NGO라는 판단에서였다. 대사관에선 ‘국익 우선’의 한계를 넘을 수 없었다. ‘공부해서 남 주자’던 그에게 갑갑한 환경이었다. 강씨는 현재 기아대책 국제사업팀장으로 정부지원사업을 맡고 있다.
월드비전 후원관리팀 장유란(33·여)씨는 세계적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에서 지난 3월 이직해 왔다. 2006년 6월∼지난해 12월 구글 한국사무소와 베이징사무소에서 근무했다. NGO로 온 뒤 연봉은 40% 수준으로 줄었지만 소외된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던 바람을 이뤘다고 장씨는 말한다. 그는 온라인 모임 기획 등을 맡고 있다.
금융권도 버리고
오세욱(39)씨는 지난해 SC금융지주에 사표를 던졌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오씨는 ‘미친놈’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장인 데다 승진 물망에 올라 있었다. 1남2녀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오씨는 군복무 후 7년간 사법시험에 도전하다 직장생활이 늦어졌다.
집사였던 그가 장고 끝에 목회를 하겠다고 했을 때 교회 담임목사는 “오 집사 말고도 목회하겠다고 줄선 사람은 많다”며 기아대책을 소개했다. 이 단체에서 저금통 사업을 맡은 오씨는 “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아이들에게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고 했다.
기아대책 재무 담당 최진화(28·여)씨는 세무사다. 창원대 세무학과 졸업 직전인 2007년 1월 한 달간 베트남과 캄보디아로 자원봉사를 갔었다. 현지 난민촌엔 평생 병원 문턱도 못 밟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40대 아들이 진료소로 업고 온 노모의 까만 발은 오래전 부러져 밖으로 굽어 있었다.
반라의 아이들은 선교사가 파 놓은 우물물을 손으로 떠 마셨다. 해질녘 움막에서 공부하는 그들에겐 희망이 아른거렸다고 최씨는 전했다. 세무사 자격을 얻은 최씨는 실무 경험을 쌓으려고 세무사무소에 취직했다. 1년 반 근무 후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했고 지난 6월 기아대책에 입사했다.
월드비전 온라인마케팅팀장 서지원(38·여)씨는 삼성카드에서 6년, 현대카드에서 2년 근무했다. 마케팅 담당이었다. 동덕여대 통계학과 졸업 후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MBA를 받았다. 카드사 마케팅은 고객에게 돈을 쓰라고 주문하는 업무여서 회의감이 꿈틀거렸다.
서씨는 2009년 월드비전에 지원했다. NGO는 권력 등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직장으로 보였다. 서씨는 지금 매체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휴일 근무가 잦고 행사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일이 많지만 보람으로 돌아오는 결과가 고생을 상쇄한다”고 서씨는 말했다.
실력·봉사정신 겸비해야
국제NGO 지원자는 계속 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굿네이버스는 신입직원 공개채용을 시작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쟁률이 매년 8.6대 1, 9.9대 1, 14.3대 1로 꾸준히 상승했다. 채용 인원은 연평균 120명 정도다. 기아대책이 15명을 뽑은 지난 6월 공채 때는 약 3000명이 몰렸다. 2명 모집에 5명이 지원한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1명을 뽑은 2009년 2월 월드비전의 아동권리보호업무 담당자 모집에는 162명이 지원하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쟁쟁한 이력을 갖추고도 떨어지는 사람이 많다. 한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사는 최근 월드비전 국제개발팀에 지원했다가 탈락했다. 기아대책의 채용 과정에선 프랑스 파리1대학 박사 학위 소지자, 10년차 방송 연출자가 떨어지기도 했다. 유명 케이블 방송의 인기 프로그램 연출자는 월드비전의 방송모금 분야에 합격했지만 입사를 포기했다. “급여가 상대적으로 적고 저개발국 출장이 잦아 고민한 듯하다”고 월드비전 관계자는 전했다.
국제NGO 인사 담당자들은 “학력과 경력이 다는 아니다”며 “고액 연봉을 고집하거나 봉사정신이 부족하다면 명문대 졸업자나 유관단체 경험자라도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글 강창욱 기자·사진 홍해인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