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브로드웨이 링컨센터 개막 공연 성황… 뉴욕에 우뚝 선 ‘안중근’… 1500여 관객 기립박수
입력 2011-08-24 23:37
미국에 진출한 창작뮤지컬 ‘영웅’(영문명 ‘Hero’)이 23일 저녁(현지시간)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코크 극장에서 성공리에 개막 공연을 가졌다. 1997년 뮤지컬 ‘명성황후’가 뉴욕에 진출해 같은 극장에서 개막한 지 14년 만이다. 1∼3층 15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영웅’은 안중근 열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사상을 그린 작품. 한국에서는 열사의 하얼빈 의거 100주년인 2009년에 초연,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공연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안중근의 ‘신화’를 그려내면서도 이토를 지나치게 깎아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안중근 역을 맡은 주연배우 정성화의 열연과 앙상블(합창과 군무를 담당하는 출연자)의 호흡이 단연 돋보였다. 드라마는 명쾌했고, 볼거리도 화려했다.
하이라이트는 하얼빈 의거 장면과 일본 대법원에서의 재판 장면. 제작사는 사료에 의거해 대사와 가사를 구성하면서도 박진감과 흡인력 넘치는 음악으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캐릭터나 이야기에 새로운 시각을 덧입혔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무엇 하나 과하거나 부족한 데가 없었다.
그러나 공연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공들인 하얼빈 기차역 장면에서는 스태프들의 무대 조작 실수가 눈에 띄었고, 영어자막은 우리말 대사의 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심지어 자막으로 표기되지 않은 채 한국인 관객 귀에만 들리는 대사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극의 전체적 흐름에 영향을 줄 만큼은 아니었으나 아쉬운 대목이다.
공연 전엔 미국인 관객에게 민족주의·국가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내용이 거부감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객석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위해 주연 정성화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해 환호했다. 안중근이 사형당하는 장면에서는 다수 관객들이 눈가를 닦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영화제작자 피어스 아니드씨는 “대단히 감성적인데다 훌륭했다”며 “음악이 특히 좋았다”고 말했다. “나는 한국이나 한국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내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게 그의 평이다. 애리조나에 거주하는 자유기고가 수지 프링글씨 역시 “음악과 이야기, 배우 연기 등 모든 면이 좋았다”고 말했다. 프링글씨는 “지나치게 민족주의에 의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대체 어떤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렇다고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다. ‘영웅’을 제작한 에이콤 인터내셔널은 이날 극장을 찾은 1500명 관객 중 공연계·언론계 종사자를 비롯한 관계자가 800여명이라고 밝혔다. 개막일이 아닌 공연일의 예매율은 현재 30% 선이다. 에이콤 측은 현지 언론 등을 통해 공연이 입소문을 타면 교포사회와 브로드웨이 관객들에게 서서히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공연 제너럴 매니저인 스티븐 레비씨는 “이야기가 강렬하고 잘 만들어졌으며 무대 세트도 과하지 않고 적절해 뉴욕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개막 공연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유엔 소속의 각국 외교관 200여명, 김숙 주미대사를 비롯한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참석해 공연을 관람했다. 반 총장은 공연 후 열린 리셉션에서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안중근은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코크 극장의 전체 좌석은 2500여석으로 제작사 측은 이날 4, 5층을 제외한 1500석을 판매했다. 공연은 다음 달 3일까지 계속된 뒤 12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내년 1월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뉴욕=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