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노경남 (7) 사업 부도난 다음날에도 전도나서

입력 2011-08-24 19:38


1993년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난이 또 닥쳤다. 당시 남편은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건강식품 사업에 뛰어든 상태였다. 신선초 녹즙을 만들어 공급하는 업체였는데 상품명은 ‘샬롬 신선초’였다. 나는 녹즙회사의 아침조회가 끝나면 전도팀을 이끌고 부천역으로 향했다. 사업 운영에 적잖은 돈이 필요해 전도 후에는 학원 강사와 개인 과외로 돈을 보탰다.

초창기 사업이 무척 잘되다 보니 남편은 친정아버지와 오빠, 고모, 시누이의 돈까지 빌려 사업을 확장시켰다. 욕심이 지나쳤을까. 95년 남편은 전혀 모르던 녹즙기계 제조업체까지 손을 댔다. 은행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96년 부도가 났다. 수중에는 단칸방 하나 얻을 돈도 없었다.

돈을 빌린 주변 친지들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우리가 사업에 실패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친정아버지는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다. “너희가 거기서 그만뒀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기반이라도 있었던 것이다. 만약 IMF사태 때 무너졌으면 재기의 발판마저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때 망한 게 너희에겐 복이다.”

감사한 것은 환경과 상관없이 내 안에서 평안이 유지되었고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는 것이다. 나는 부도가 난 다음날에도 전도를 나갔다. 전도대원들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너무 힘이 드니 체념밖에 나올 게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죽기밖에 더하겠어. 죽으면 천국 가잖아. 죽어도 승리하는 건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망해도 천국’이란 생각이 들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밀려와 더욱 열심히 전도했다. 어느 날 부천역에서 전도하면서 무릎 꿇고 한없이 솟구치는 울분의 기도를 한 적도 있다.

“하나님! 제가 이 많은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이 주실 것이 커서 제가 준비한 그릇을 버려야 한다면 지금 완전히 버리게 하시옵소서.” 삶의 환경은 어려운데 갈수록 영접자들이 많아졌고 전도가 나의 사명임을 더욱 깨닫게 됐다. 교회에서 1개 구역을 맡겨주면 2구역, 3구역으로 늘어갔고 주일학교 학생도 점점 불어났다.

학원에서는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워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교회에서 전도팀과 함께 부천역 전도를 하고 오후 2시부터는 학원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전도를 해도 된다’는 조항을 꼭 넣었기 때문에 전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도 부천역에 나가 전도팀과 전도에 매진했다.

하지만 남편의 불평은 갈수록 늘어갔다. “주님만을 위해 살았는데 하나님이 우리집을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드시는 거냐”는 것이었다. 예수 믿기 전 가진 쓴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술에 손을 대고 가정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부부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혼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극단을 달렸다. 99년 우리 부부를 붙잡아 준 것은 아들 성환이다. 환경이 어렵다 보니 아이에게 천국 비밀과 복음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더 많이 교육을 했다.

“엄마, 오늘은 집에 일찍 오세요. 꼭 보여드릴 게 있어요.” 아이가 내 손을 붙잡고 이끈 곳은 TV 앞이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인생대역전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엄마, 이 사람들 좀 보세요. 우리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는데 참고 견디니까 좋은 일이 생겼어요. 우리집도 그렇게 될 수 있겠죠?” 나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바로 바깥으로 뛰어나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