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
입력 2011-08-24 10:19
참 예배
‘속초 회냉면’ 집이 속초에 있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시내의 한 복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내가 맛있어 하는 ‘속초 회냉면’ 집은 홍천 팔봉산 밑에 있다.
산으로 가는 길목에 버젓이 내걸린 ‘회냉면’이라는 간판이 생뚱맞게 느껴지곤 했었다. 누가 이런 산골에서 회냉면을 먹을까 싶었고, 그런데도 간판을 걸어야 했을 주인의 처지가 딱하게도 생각되었다. 그래서 깔보던 식당이었다. 너무 달게 먹었나보다. 먼바루 개 짖는 소리에 팔봉(八峰)에 걸린 보름달이 점점 부풀고 있었으니까.
배가 부르면 생각도 차는 법. 차 한 잔을 놓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문득 일행 중 한 사람이 예수께서 이방 여인에게 하셨다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온다”(요 4:23)는 말씀을 화제(話題)로 올렸다. 예배가 뭐냐는 거다. 우리가 소위 교회라고 하는 곳에 모여 묵도-기도-설교-헌금-축도 이렇게 하는 게 진짜 예배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그건 예배가 아니라 집회란다. 그가 말하는 예배는, 일찍이 이방 여인의 질문에 ‘예배가 무엇이냐 하면’ 했던 예수님의 대답으로서의 예배는 요즘 우리가 하는 그런 게 아니란다. ‘신령과 진정으로 사는 것’ 또는 ‘하나님의 뜻과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 참 예배라는 것이다. ‘삶=예배’란다. 그래서 여인더러도 똑바로 살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하는 그거는 뭐냐고 묻지 않았는데 벌써 그는 다음 말을 내뱉고 있었다.
“생각해봐. 우리가 예배라고 하는 그건 ‘참 삶(진짜 예배)’을 살기 위해서 모이는(集會) 거야. 모여서 어떻게 진정한 예배를 할 수 있는지 그런 걸 더불어 확인하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그러는 거야. 그걸 잘 해야 잘 살 수 있잖아. 예배를 공간과 의식과 제도에 가둬 버리니까 도로 예수 이전이 된 거지. 그래서 예수 믿는 게 이원화된 거야. 모르겠어? 너나 나나 예배는 일정한 장소와 시간과 규칙으로 ‘해 버리고’, 살기는 제 멋대로잖아. 그게 무슨 예배야. 삶이 예배가 되면 하나님이나 예수가 우상이 안 되는데 집회를 예배라고 하니까 우상이 되는 거야.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