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여성 인력 중요성 재차 강조 왜… “비리없고 성실” 평가 대거 중용 의지 내비쳐

입력 2011-08-23 22:19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3일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은 최근 기업 경영에서 꼼꼼하고 성실한 여성들의 장점이 부각되고 이러한 장점이 경영성과로 이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지난 6월 삼성테크윈의 비리를 보고받고 대로했던 이 회장이 부정부패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여성 임원들을 중용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이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 부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하게 질책했었다. 이에 따라 연말 인사에서는 여성 인력의 대거 중용과 함께 최근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등 격변하는 기업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대대적인 새판짜기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의 여성 중시 인력관은 이날 발언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4월 21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처음 출근해 사내 어린이집을 둘러보던 중 “자녀를 맡긴 여직원의 만족도가 높아 수용 요청이 많지만 한계가 있어 대기 순번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즉석에서 하나 더 지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삼성전자가 입주한 C동 1층(120명 수용)에 이어 내년 1월 개원을 목표로 삼성생명이 들어 있는 A동 3층에도 1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추가 설치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전에도 “(여성인력 활용을 위해) 10년 후를 보고 사내 어린이집 확대를 검토하라. 그래야 임직원 사기가 올라간다”고 근무 여건 개선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97년 쓴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다른 나라는 남자, 여자가 합쳐서 뛰고 있는데 우리는 남자 홀로 분투하고 있다. 마치 바퀴 하나는 바람이 빠진 채 자전거 경주를 하는 셈이다. 실로 인적자원의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준다면 이에 따라 당사자가 겪게 될 좌절감은 차치하고라도 기업의 기회 손실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요즘 여성들은 옛날 여자들이 아니다. 출산하는 것 빼고는 남자와 똑같지 않느냐” 등의 발언으로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에서 여성이 임원으로 승진하기는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라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삼성은 계열사를 통틀어 여성 CEO가 배출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사장이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맡은 것이 전부다. 전체 삼성 임직원 21만명 가운데 여성 인력은 5만6000명으로 26.7%다. 4명 중 1명 이상이 여성이지만 임원은 전체 1760명 중 34명(1.9%)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2011년 지속 가능 보고서’를 통해 “2020년까지 여성 임원 비율을 전체의 10%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국내 100대 상장기업의 총수 일가를 제외한 상무보급 여성 임원은 76명에 그친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국내 최초로 대거 공개 채용한 대졸 여사원이 부장과 차장 등 중견간부로 올라가 임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어 앞으로는 여성 임원의 비율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희 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