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2세의 배재학당 피아노… 김순열·한동일·백건우와 호흡한 ‘한국음악史 산증인’

입력 2011-08-23 22:29


서울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내에 있는 ‘배재학당 피아노’가 23일 문화재청에 의해 우리나라 근현대 음악 관련 유산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이 피아노는 1911년쯤 독일 블뤼트너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 선교사의 아들이 1932년부터 약 1년간 대강당을 신축하면서 미국에서 배편으로 가져왔다. 현존하는 국내 연주회용 피아노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문혜영 학예연구사는 “당시 공연을 위한 피아노는 상당히 귀했기 때문에 학생 교육보다는 음악가들의 연주용으로 주로 사용됐다”며 “특히 일본강점기에는 공연활동에 대한 제약이 많아 상대적으로 간섭이 덜했던 외국인 설립 미션스쿨인 배재학당 공연장이 선호됐다”고 말했다. 연주자들에게는 배재학당 피아노 앞에 앉는 것만도 영광인 ‘꿈의 피아노’였다는 것이다.

한국 정상급 작곡가 중 한 명인 이흥렬(1909∼1981)을 비롯해 서울대 교수이자 예술원 회원을 지낸 피아니스트 김순열, 천재 작곡가 김순남 등이 이 피아노로 작품을 연주했다.

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한동일 백건우도 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한동일은 1953년 ‘천재소년 음악가 유학고별 음악회’란 이름으로 도미 고별 연주회를 가졌고 백건우도 배재학당 후신인 배재중학 재학시절 이 피아노로 연습을 하기도 했다. 문 학예연구사는 “백 선생님의 경우 그 당시 연주회를 자주 다녔기에 학교 측이 앞머리만 기를 수 있게 배려했다고 한다”며 “백 선생님 연주 자료사진을 보면 앞머리만 긴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피아노는 몇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역사박물관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55년 이후 공연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이후에는 사용되기보다는 보존됐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 학예연구사는 “배재학당 졸업생들에 따르면 이 피아노를 인민군이 가져가려고 했는데 무거워서 못 가져갔다고 들었다”며 “6·25 폭격에도 살아남은 피아노인데, 더 신경 써 관리해야 된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