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공개 ‘아리랑’ 봤더니… 영화에 대한 애증 토로한 김기덕의 넋두리

입력 2011-08-23 18:00


지난 5월 열린 제6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던 김기덕(51) 감독의 ‘아리랑’이 국내에서도 베일을 벗었다. 칸영화제 ‘주목한 만한 시선’ 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2008년 ‘비몽’ 제작 이후 칩거에 들어갔던 김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인데다 후배 감독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한국 영화계에 쓴소리를 한 영화라고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지난 18, 19일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에서 두 차례 특별상영된 ‘아리랑’은 어느 산기슭에 자리 잡은 농가에서 혼자 기거하는 김 감독 자신의 어찌 보면 신선 같고, 어찌 보면 궁색한 일상을 담담하게 비추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수돗물과 화장실도 없는 그곳에서 추레한 몰골로 밥 지어 먹고, 똥 싸고, 텐트에서 잠자며 살아가는 모습을 한가하게 따라가던 영화는 그의 독백이 이어지면서 긴장이 스며든다.

김 감독은 자신과 또 다른 모습의 자신을 내세워 영화와 자신의 영화인생에 대한 질문들에 자문자답한다. “김기덕 넌 지금 무엇 하느냐, 왜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느냐, 너의 문제는 무엇이냐.”

김 감독은 자신에게 배우겠다고 매달려놓고는 대자본을 찾아 떠난 후배 감독에 대한 서운함, 영화감독으로서의 자부심과 좌절, 영화에 대한 욕망 등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탔지만 국내 영화계에서는 ‘아웃사이더’였던 현실에 대한 분노와 회한도 엿보인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폐차장과 전자제품 공장 직원, 길거리 화가 등을 거쳐 온 개인사도 그의 과거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충격적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일수도 있고, 드라마일수도 있고, 환타지일수도 있다”고 한 김 감독의 말처럼 장르가 모호하다. 김 감독이 직접 제작, 시나리오, 연출, 편집, 촬영, 사운드는 물론 유일한 배우까지 맡아 완벽한 ‘원맨쇼’를 펼치지만 영화는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객석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이어질 정도로 영화적 재미도 유지된다.

‘아리랑’은 아무래도 영화계와 영화에 대한 김기덕 방식의 사변적인 넋두리로 읽혀진다. 국내 영화계와는 불화를 겪고 있지만 자신은 나름대로 멋진 영화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국내 상영본은 칸에서 상영됐던 작품과는 약간 다르다. 후배 감독의 실명을 언급한 부분 등 1분 정도 분량이 삭제됐고, 칸영화제 수상 장면이 에필로그로 삽입됐다. 러닝타임 100분. 개봉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