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진희] 21세기 티파티
입력 2011-08-23 17:50
1773년 12월 16일 저녁. 모호크 인디언으로 변장한 수십 명의 식민지인들이 보스턴 항에 정박한 영국 동인도 회사의 배에 올랐다. 그들은 352개의 차(茶) 상자를 바다에 투척했다. 대영제국의 부당한 과세에 대한 항의표시였다. 일명 ‘보스턴 티파티’가 개최된 것이다. 독립전쟁과 아메리카 혁명으로 이어진 ‘한겨울밤의 습격사건’은 ‘대의권 없이 과세 없다’를 구호로 채택했다.
‘대의권’이 있어야 과세가 정당하다는 시민혁명의 이념은 두 세기가 경과한 오늘날 ‘과세 없다’로 변질된 채 미국 시민을 유혹하고 있다. 다시 티파티가 그 주역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초기부터 추진해온 경기부양책과 금융개혁, 의료보험 개혁 등을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한 것이 보수적 풀뿌리 운동을 촉발했다. 2009년 2월 탄생한 21세기 티파티는 그의 원조와 마찬가지로 ‘과세 없다’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공통점은 거의 없다.
美 경제상황을 악화시키고
18세기 티파티가 내세웠던 세금감면은 식민정책에 대한 저항이었고, 오히려 아메리카 혁명기의 경전이 된 ‘상식’에서 토머스 페인은 정당한 과세를 통해 공동체 복지와 공익 향상을 꾀할 것을 주장했다. 티파티 운동 이후 수립된 공화국 정부는 세금을 공익향상의 신성한 수단이자 국민적 의무로 간주했다. 그런데 21세기 티파티는 ‘세금 거부’를 들고 나왔다. 세금은 없다고 주장하는 티파티의 신념은 공화당 의원들에게 전파되어 지난 부채증액협상 과정에서 미국을 디폴트 직전까지 몰고 갔다. 지난 13일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예외 없이 증세불가를 약속하며 티파티 지지자들의 표를 얻으려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티파티운동의 지지자들에게는 작은 정부와 감세가 미국적 정체성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재정지출의 증가는 성실한 납세자의 불합리한 고통이고, 복지확대와 기업규제는 사회주의적이자 비미국적인 것으로 비난받는다. 2010년 선거에서 감세 및 재정지출 축소와 같은 강령을 통해 세력을 확장한 티파티는 경제적 보수주의 노선이 미국을 본래의 ‘위대한 미국’으로 환생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티파티의 이런 믿음은 미국이 겪고 있는 사회문제와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데에 난점이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처한 진짜 위기는 재정적자가 아니라 실업과 경제침체라는 점을 환기시키지만, 작은 정부를 맹목적으로 믿는 티파티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티파티의 목소리가 반향을 얻을수록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기조가 지속되고 복지기반과 재정기반은 더욱 취약해진다. 그 결과가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임은 불 보듯 뻔하다. 불평등 악화의 피해는 티파티 지지자들이 안게 될 것임을 그들은 외면한다. 대부분 서민층인 티파티 지지자들이 대기업과 부자를 위해 싸우는 근본 이유는 티파티 신념체계가 미국적 정체성에 대한 두개의 전통 중 하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공익을 파괴할 위험이 크다
작은 정부와 개인적 권리를 절대시하는 자유주의적 전통과, 큰 정부, 적자재정, 복지확대와 같은 뉴딜적 전통 중 티파티는 전자를 옹호한다. 세금 없다는 구호는 곧 ‘뉴딜은 가라!’는 말이다. 금융위기 앞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공세에 위축된 상황이다.
그러나 초기 자유주의 노선에서 파생된 재정적 보수주의가 미국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18세기 티파티가 ‘공공선’을 중시한 최초의 근대적 공화국의 탄생에 기여했던 것과 달리, 21세기 티파티는 사회안전망의 파괴와 사유화, 원자론적 개인주의를 촉발해서 이 시대에 필요한 공공선과 공익을 파괴할 위험이 크다. 원조 티파티가 공화국의 생성을 가능하게 했다면 미국의 위기국면에 나타난 21세기 티파티는 그것을 해체한다. 동명의 티파티가 이름만 같을 뿐 본질이 너무도 다른 이유다.
김진희 경희사이버대 교수 미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