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육상선수권 10종 국가대표 김건우 선수의 삶과 신앙
입력 2011-08-23 17:41
여섯 살 때부터 교회를 나갔지만 10종 국가대표 김건우(31)선수는 고등학교 3학년 시합 도중 처음 기도란 걸 해봤다. 10종 경기 중 하나인 장대높이뛰기에서 1, 2차 파울을 당한 상황에서였다. 실패하면 육상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하나님,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앞으로 교회도 잘 다니고 남들 위해 봉사도 할게요.”
기도를 마치고 도전한 그는 1m10㎝란 고등학생 최고 신기록을 냈다. 미래의 10종 국가대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국내 최초로 도하 아시안게임 동메달,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에 빛나는 김건우 선수를 17일 대구 율하동 선수촌교회에서 만났다.
그는 서원기도로 자신의 인생이 변했다고 고백했다. 김 선수는 원래 육상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달리기가 좋아 육상을 시작했지만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개인종목이 없었다. 그나마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로 시작한 높이뛰기와 3단뛰기는 매번 시합마다 신통찮은 성적을 얻었다. 경북체고 졸업반이지만 전공을 살려 입학할 대학이 없을 정도였다. 감독은 훈련에 나온 그를 외면했고 부모조차도 “무리해서 체육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다른 길을 권고하기까지 했다.
이러다 대학도 못 가겠다 싶어 육상을 접기로 한 그에게 코치는 종목 변경을 권했다. “조금씩 흉내는 낼 줄 아니까 10종에 도전해 봐라.” 10종은 이틀에 걸쳐 멀리뛰기, 포환던지기, 높이뛰기, 110m 허들, 400m 허들, 원반던지기, 장대높이뛰기, 창던지기, 100m와 1500m 달리기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경기다. 조언대로 그는 10종으로 종목을 바꿨다. 당시 시합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때만 해도 육상은 사람들의 관심 밖 종목이었어요. 그중에서도 10종은 특히 그랬습니다. 체력 소모가 엄청난 데다 10개를 해도 메달은 어차피 1개니까요.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계속 훈련하다 보니 제게 잘 맞는 운동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국내 최초 10종 국가대표로 국내기록을 갈아치운 그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점차 자만심이 생겼다고 했다. 어떤 시합에 나가도 다 이길 것만 같았고 하나님이 없어도 1등만 하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2007년 12월,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던 발에 족저근막염이란 병이 찾아왔다. 2년간 훈련을 할 수 없었다. 부상이 1년 정도 계속돼 시합에 나갈 수 없게 되자 주변에선 은퇴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한 달간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하며 매달렸지만 예전 기량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창 힘들어하던 그때, 함께 선수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역도 국가대표 장미란 선수가 그에게 찬양인도를 부탁했다.
“미란이가 선수촌교회 수요예배에 첫째 주와 마지막 주 찬양인도자가 없다며 제게 부탁을 해왔어요. 왠진 몰라도 그땐 미란이 목소리가 하나님 음성 같아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죠. 부상 이후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찬양인도를 하면서 기쁨을 찾게 됐고 나도 모르는 사이 발도 점차 완치됐죠. 부와 명예만 추구하던 제가 낮추니 하나님께서 세우시더라고요.” 2010년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 은메달은 연단의 과정에서 얻은 수확이었다.
부상 이후 하나님의 존재를 더 뚜렷이 알게 됐다는 그는 2년째 선수촌교회에서 찬양인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찬양단의 이름은 ‘주왕찬양단’. 주왕은 ‘주님은 우리 왕’의 줄임말로 장미란 선수가 지은 이름이다.
그는 자신의 달란트인 몸과 기량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고 했다. “시합은 또 다른 예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합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복음 전파의 도구가 되거든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그의 목표는 10종 경기에서 800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 것이다. 8000점을 넘기면 국내 최초이자 최고 기록이 되고 아시아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선수가 된다.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10종 경기는 아직 생소한 종목이에요. 제가 열심히 해서 후배들에게 본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 희망을 주는 선수가 되는 게 제 꿈입니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넘어 최고가 되기 위해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가 최고의 기량을 펼치겠습니다.”
대구=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