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8-23 17:40


날마다 내가 죽는 삶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럴 수 있지 뭐. 하든 말든 놔두세요. 그러다 말겠지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원래 속이 좋은 이런 사람들은 꼭 천사 같다. 그런 사람의 성격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결단력이 없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다. “이럭저럭 살다 가는 거죠.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말한다. 그래서 큰일을 못한다.

이렇게 다 사람은 각자 장단점이 있다. 화를 잘 내고, 있는 대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은 추진력과 리더십이 있어서 좋지만 그 성질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가 쉽다. 반면에 전혀 성질을 내는 일이 없이 조용하고 느긋한 사람은 추진력과 리더십이 부족하다. 이런 장단점 때문에 하나님께 크게 사용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잘 하라고 야단치며 거침없이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너무 속이 상해서 속에서 분이 나고 혈기가 올라올 때는 말을 안 하려고 굉장히 조심한다. 그렇게 노력하는데도 이미 내 속에서는 활화산 같은 불덩이가 막 휘돌아 가고 있다. 얼른 방 안에 들어가서 일어났다 앉았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분을 참아야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참 있다가 분이 가라앉으면 그제야 ‘주님, 왜 제 속에서 육이 올라옵니까? 왜 영적인 판단을 못했을까요? 왜 신령한 판단을 못했나요?’라며 주님께 기도한다.

내 안에 있는 혈기의 근성이 육신을 100% 장악하고 육신의 소욕으로 나를 지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이 내 혀를 통해 말로 터져 나오고 행동으로 터져 나올까 두렵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며 참는 것이다.

내가 나를 운영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나를 움직여야 한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 육신의 소욕이 죽고, 정욕이 죽고, 세상에 뿌리를 내린 근성이 죽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말했다. 왜 날마다 죽는다고 말했는가? 이제 내가 죽었나 싶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내가 살아나고, 입으로 세상을 말할 때 내가 살아나고, 귀로 세상을 들을 때 내가 살아난다. 자기 소욕이 계속 살아난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 것은 내가 살아나는 그때마다 육신의 소욕을 성령으로 죽인다는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미운 짓을 하면 기분 나쁘고 속이 상한다. 이것은 그 일이 나의 육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생각과 환경이 내 육에 와서 부딪치고 내 약점을 건드린다 해도 육적으로 느껴지는 아픔을 즉시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똑같은 일이 영적으로 나에게 부딪칠 때는 다르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죄를 짓고 있으니 얼마나 불쌍한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얼마나 불쌍한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사랑의 능력이다. 영적으로 부딪치고 영적으로 볼 수 없으면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다. 진실한 사랑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신의 자아를 죽이고 영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이다.

윤석전 목사 (서울 연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