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밥 알아지지아
입력 2011-08-23 17:46
무아마르 카다피의 최후 거점으로 밥 알아지지아(Bab al-Azizia)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남쪽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미사일 방어를 위해 세 겹의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하에는 벙커와 통행로가 설치돼 있다. 6㎢ 단지 내부에는 카다피의 관저와 행정동, 가족의 사저가 있고 친위부대 막사가 배치돼 있다. 카다피가 여름을 보내는 천막도 설치돼 있다. 아랍어로 ‘화려한 문’을 뜻하는 이곳은 트리폴리 국제공항으로 통하는 간선도로와 곧바로 연결된다. 카다피가 언제부터 이곳을 요새화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평화 시에는 국가 공식 연회도 이곳에서 열린다.
밥 알아지지아는 카다피 42년 철권통치의 근거지여서 서방의 주 표적이 돼 왔다. 1986년 4월 5일 미군이 즐겨 찾는 베를린의 한 디스코텍에서 폭발물 테러로 미국인 1명이 죽고 미국인 75명이 부상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테러의 배후로 카다피를 지목, 공습작전을 승인했다. 같은 달 15일 영국에서 이륙한 F-111기 9대가 공중급유를 받으며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밥 알아지지아를 공격했다. 지중해 상의 미 항공모함 3척에서도 미사일이 발사됐다. ‘엘도라도 캐니언’으로 명명된 이 작전으로 카다피의 철옹성은 일부 건물이 부서졌다. 15개월 된 카다피의 수양딸이 숨졌다고 카다피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카다피 자신은 간발의 차로 공습을 피했다. 승인 받지 않은 비행기가 몰타 상공에서 트리폴리를 향해 날아간다는 사실을 몰타와 이탈리아 총리가 귀띔해 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다피는 손상당한 이곳을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 파괴된 건물은 수리하지 않고 ‘저항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존해 반미의 상징물로 활용했다. 미 전투기를 잡아 으스러뜨리는 주먹상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3월 20일 단행된 ‘오디세이 새벽’ 작전 때도 이곳은 어김없이 타깃이 됐다. 공습 다음날 수천명의 카다피 지지자들이 몰려 인간방패를 형성하기도 했다. 리비아 민주화 혁명이 시작된 후 처음 행해진 카다피의 지난 2월 연설도 이곳에서 녹화됐다. 카메라는 반미 선동을 위해 예의 주먹상을 여러 차례 비췄다.
카다피가 현재 자신의 요새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측이 엇갈린다. 어쨌든 이곳의 제압은 시민혁명 승리의 징표가 될 전망이다. 이제 밥 알아지지아가 마지막 주목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