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노경남 (6) 기도와 치료로 아들의 고개를 고치다
입력 2011-08-23 17:55
아들 성환이의 턱은 오른쪽 목 부위와 붙어 있을 만큼 기울어져 있었다. 다들 장애로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밤에 2시간씩 번갈아 가며 잠든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잠재의식 치료법이라는 것도 병행했다. 평상시 아이의 고개를 돌리려면 통증을 크게 느껴 손도 못 댔지만 일단 수면에 들어가면 그 통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때 치료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굳어버린 고개를 조금씩 돌리고자 받침대로 성경을 사용했다. 신기하게도 6개월부터 턱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10개월 만에 성환이의 고개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때의 경험 때문에 우리 굿뉴스사관학교는 장애우 학교인 참빛학교 등과 자매결연을 했다. 학생들은 장애인음악회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국제장애인 문화교류협회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장애우를 특별한 달란트를 지닌 소중한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성환이의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던 93년 5월이었다. 멀쩡하시던 시아버지가 정말 참혹한 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결혼하자마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해 한 달에 두 번씩은 꼭 반찬을 싸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충북 괴산을 향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아버지는 시댁에 내려갈 때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가야, 난 군 복무시절 교회에 다녔고 세례까지 받았단다. 다음에 믿을 테니 예수 믿으라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꾸나.”
결국 시아버지는 예수님을 모른 채 차디찬 시신으로 병풍 뒤에 누워 계셨다. 전도에 모든 것을 걸고 살던 나에게 예수를 믿지 않고 갑작스레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망자를 앞에 두고 벌이는 술과 도박판, 곡소리…. 예수 믿지 않고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장례식이 그렇게 암울할 수 없었다. 희망이라곤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었다. 정말 지옥이 딴 데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 가족들은 액운을 물리쳐야 한다며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어머니도 그럴 생각인 것 같았다. ‘시집 잘못 왔다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집안에 자리잡은 악한 영의 정체를 뿌리째 뽑아내야겠다.’
“어머니, 굿을 하려면 저와 인연을 끊으셔야 합니다. 당장 짐을 싸서 저희 집으로 올라가시죠.”
시어머니만이라도 예수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이 장남이 아님에도 내가 먼저 나서서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선포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부천으로 모시고 올라왔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10년 단위로 3단계 장기 기도전략을 세웠다. 아들에게 축복의 명문 가문을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큼지막하게 써서 다음과 같이 벽에 붙여 놓았다.
‘1단계: 2003년까지 한국의 20% 안에 들어가는 명문 가문을 만든다. 2단계: 2013년까지 세계 복음화를 위해 세계 20% 안에 들어가는 명문 가문을 만든다. 3단계: 2023년까지 하나님과 만찬석을 함께할 준비된 신부들을 모아 예수님을 준비하는 가문이 된다.’
이렇게 축복의 가문이 되기 위한 장기적인 기도에 들어간 지 벌써 18년이 돼 간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돼 가고 있다.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던 도련님은 우리 집에 올라와서 예수로 삶의 목표를 발견하고 사시에 합격했으며, 성환이는 호주에서 명문학교에 재학 중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