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역할론 언급한 6.4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 위안즈밍 목사
입력 2011-08-23 19:05
[미션라이프] 무신론자였다.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당성(黨性) 또한 남달랐다. 르포작가 쑤샤오캉(蘇曉康), 왕루샹(王魯湘)과 함께 집필한 다큐멘터리 ‘허상(河?)’이 1988년 6월 중국 국영방송 CCTV에서 방영되기 전까지였다.
허상에 대해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은 열광한 반면 중국 공산당과 정부 관계자들은 노발대발했다. ‘허(河)’는 황하문명, 즉 중화민족을 상징한다. ‘상(?)’은 요사(夭死)를 뜻하는 ‘일찍 죽을 상’자다. 허상은 결국 황하문명으로 상징되는 중국문명이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중국이 현대화를 이루기 위해선 서구가 걸어간 길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이는 이듬해 5∼6월 천안문광장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시대정신이기도 했다. 그는 1989년 6·4 민주화운동 때 70명의 지식인들이 당국에 보내는 공개 서안의 초고를 작성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6·4 천안문 사태 이후 책임을 물을 희생양을 필요로 했다. 그는 어김없이 타깃이 됐다. 이 때문에 중국 최고 학부의 하나인 인민대학 철학과 박사과정을 재학 중이던 그는 고국과 가족을 등져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이국땅에서 그는 복음을 접했다. 중국 출신 민주인사 중 첫 번째로 크리스천이 됐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희망의 빛줄기이자 호흡과도 같았다. 현재 중화권 부흥사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위안즈밍(遠志明·56) 목사의 이야기다.
위안 목사가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 Acts29비전빌리지에서 열린 ‘미션차이나 2011’ 강사로 내한했다. 첫 인상에서 투사와 같은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마음씨 좋은 이웃 형과 같이 느껴졌다. 이날 저녁 인터뷰를 통해 그는 한국교회에 대한 한없는 기대를 드러냈다. 미래 중국과 중국교회를 위한 한국역할론도 제시했다.
그는 먼저 “한국교회의 성장과 선교적 열정이 존경스럽고 놀랍다”는 말로 한국 기독교의 생명력을 높게 평가했다. 위안 목사는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 열정이 과거에 비해 식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다 할지라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열정이) 뜨거울 것”이라며 “만일 저하되고 있다고 (한국 성도들이) 느낀다면 좋을 수 있다. 이는 좋아지기 위해 더 분발할 수 있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0년 기독교역사를 살펴보면 복음은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거쳐 중동, 이슬람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중국의 형제자매들이 그 빚을 청산하기 위해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중국의 선교적 열정은 한국교회와는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교회가 과거에 비해 성장했다고 해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위안 목사는 “중국교회, 특히 가정교회는 불완전한 자유상태에 있다”면서 “성도에 대한 양육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하고 목회자 또한 매우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교회의 선교적 잠재력만큼은 매우 크다며 절대 기독교인구(6500만명∼1억명)가 많기 때문에 훗날 선교사 파송 숫자 면에서 세계1위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자신했다.
지금까지 20주째 정부와 집회 장소를 놓고 대치중인 베이징 서우왕(守望)교회와 관련해 그 또한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기독교 발전에 있어 (이번 마찰은) 필연적입니다. 중국 가정교회는 원래 지하에 있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면서 지상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도시신흥교회가 부흥하면서 성도들이 마음껏 예배를 드릴 장소가 필요해졌죠. 즉, 정부의 관리를 받지 않으면서도 합법적인 예배처소가 요청됩니다. 따라서 언젠가는 수면위에 올라올 문제였죠.”
위안 목사는 “서우왕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봉대가 된 것”이라며 “선두에 서면 희생 또한 불가피하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와 해외 화교교회들이 중국교회를 위한 3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중국교회를 적극 격려해줘야 합니다. 중국교회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지지를 해줘야 합니다. 둘째, 실질적인 지지로 중국교회의 신학수준과 목양훈련을 강화시켜줘야 합니다. 셋째, 해외에 나와 있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위안 목사는 자신과 같은 망명자나 유학생 가운데 훗날 목회자가 된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중국 본토에 대한 선한 영향력이 커진다”고 했다. 그가 제작한 5000년 중국문화와 기독교의 관계를 담은 ‘선저우(神州·신의 나라)’와 핍박받는 중국 가정교회의 이야기인 ‘십자가’, 사복음서 이야기인 ‘복음’, 해외화교들의 간증인 ‘비안(彼岸)’ 등은 중국 내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실제로 이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적잖다. 위안 목사는 앞으로 서구선교사들이 중국에 복음을 들고 온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준비중이라고 했다. 이때 한국 선교사들이 중국교회의 발전에 기여한 내용도 담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향후 중국 지도자들이 기독교 사상에서 중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경제가 발전한 반면 민주를 보장하는 제도나 윤리, 도덕은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어요. 중국 지도부는 유가나 불가 사상보다는 기독교 사상이 사회의 불안요소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때가 기회입니다.” 위안 목사는 기독교가 공산당과 정부와 대립요소가 아니라 국가를 보다 건실하게 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는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의 선교전략, 부흥전략이 아니라 기도, 헌신 등 복음에 대한 열심”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독인들이 새벽 4∼5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드리는 열정을 중국 기독인들이 배워야 합니다.” 위안 목사는 마지막으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데도 양국 기독인들이 기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현재 많은 조선족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개방이 시간문제라는 점에서 이들이 북한으로 들어가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위안 목사는 누구
1989년 홍콩을 거쳐 파리로 이주, ‘민주중국전선’에 참여하며 잡지 ‘민주중국’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이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방문학자로 있다가 91년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듬해 미시시피개혁신학교에서 타문화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99년 ‘선저우전파협회(China Soul for Christ Foundation)’를 설립, ‘십자가’ 등의 다큐를 제작했다. 2009년 10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노자와 성경’ 등의 저서가 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사진 신웅수 대학생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