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차기 대법원장이 해야 할 일

입력 2011-08-22 19:54


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양승태 전 대법관은 법원 내 평이 좋다. 보수적인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회발전에 뒤떨어진 판결을 내릴 정도로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심 없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 판사로 정평 나 있다. 이런 점에서 법적 안정성이 가장 큰 과제인 사법부로서는 적임자를 수장으로 맞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고 말하고 싶다.

차기 대법원장은 우선 신중한 언행이 몸에 배야 한다.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대법원장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전국의 모든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지 100년이 넘었고 법관 개개인의 인품과 자질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을 넘어섰다고 보여진다. 문제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사법부 수뇌부다.

법적 안정성 유지에 힘쓰고

이용훈 대법원장의 행보를 잠시 더듬어 보자. 그는 취임 직후 전국의 법원을 초도순시하면서 “앞으로 검찰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리라”고 말해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그 말의 참뜻은 앞으로는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지하지 말고 법관이 검찰과 피고인이 주장하는 바를 잘 가려 판단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만든 조서를 쉽사리 믿지 말고 피고인의 말도 충분히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곧 검찰수사를 경시하는 것으로 오해 받으면서 이후 검찰과 법원 사이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양 후보자로서는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법원 안으로는 법관인사명부에 의한 벽돌쌓기식 인사를 지양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 법원 내에는 이른바 ‘골품제’로 불리는 판사들의 임관 시 성적을 기준으로 한 인사명부가 있다. 동기생이라도 연수원 졸업 성적에 따라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이 때문에 명 판결을 내려도 최초의 성적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녀 자신의 태생적인 한계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법관 본연의 임무인 양 당사자가 모두 만족하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사법 역사가 짧지 않은 우리나라에 아직도 명 판결이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처럼 언론자유 제한의 한계를 규정한 ‘명백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의 법칙’, 흑백갈등을 명쾌하게 정리한 ‘분리하되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같은 의미 있는 판결이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수재가 모인 법관사회에서 이런 판결이 나오지 않는 것은 수장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 솔직한 판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문하고 싶은 것은 법원 내 존재하는 ‘우리법연구회’나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 같은 조직을 없애라는 것이다. 우리법연구회는 진보 성향의 판사모임으로 노무현 정권 시절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나 해체시킬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민판연은 양 후보자가 몸담은 조직이라 경우가 다르다.

법원내 사조직 축출하기를

뿐만 아니라 한때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목영준 헌법재판관과 양창수·박병대·민일영 대법관이 모두 이 단체 소속이다. 서울법대 출신 가운데 사법연수원 성적이 매우 우수한 극소수만 골라 ‘이너서클’ 형태로 유지돼온 이 단체는 지난해 4월 발간한 논문집에서 처음으로 회원 명단이 공개됐다. ‘법원의 하나회’로 비판받는 이 조직은 즉시 해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두 조직은 연구를 이유로 모여 법원 인사 등에 알게 모르게 간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법원장은 대통령, 국회의장과 함께 3권을 나눠가진 권력의 한 축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입법권이나 행정권보다 결코 적지 않은 권한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는 신중해야 하고 보수적이어야 한다. 최종적인 국민의 행동강령을 정하는 법원의 수장으로서 차기 대법원장은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새길 수 있는 판결이 많이 내려지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길 바란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