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 정권 붕괴] 반길 이웃없는 ‘아랍 왕따’… 후세인처럼 도망자 될 수도

입력 2011-08-22 18:38

해외 망명인가. 국내 은신인가.

42년 철옹성을 지켜 오던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몰락이 임박하면서 그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카다피가 리비아 반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생포되지 않는다면 그는 해외 망명과 국내 은신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해외로 망명할 경우=미국 NBC뉴스는 정보보고서에 기초한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 카다피가 가족과 함께 리비아를 떠나 튀니지로 망명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튀니지는 리비아 서쪽과 국경을 접한 나라로 내전이 격화되던 지난 5월 카다피의 부인과 딸이 도피했다는 소문이 나돌던 곳이다.

카다피는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벤 알리 전 대통령은 ‘재스민 혁명’에 의해 이미 권좌에서 물러나 사우디아라비아로 도피한 상태여서 튀니지 정부가 카다피의 망명을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아랍권의 다른 국가들 중에서도 카다피를 반겨줄 나라는 없어 보인다. 그나마 사우디아라비아가 그동안 축출된 지도자에게 자국 망명을 허용하며 관대한 입장을 보여 왔다.

그러나 카다피는 1977년 사회주의와 이슬람주의, 범 아랍주의를 융합한 ‘자마히리야(인민권력)’ 체제를 선포하는가 하면 자신의 혁명지침서 ‘그린북’을 이슬람 경전 코란에 견주는 행위로 아랍권 내에서 반발을 산 전력이 있어 사우디 망명 가능성도 높지는 않다.

◇리비아에 은신한다면=망명이 여의치 않다면 카다피는 고향인 시르테나 수도 트리폴리에서 은신해야만 한다. 한 편에서는 카다피가 이미 시르테나 남부 사막 기지에 은신 중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반군의 트리폴리 진격 작전이 시작된 지난 20일 국영TV를 통해 공개된 육성 녹음 메시지의 통화 음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그 근거다.

독재자가 권좌에서 쫓겨난 뒤 고향에 은신한 사례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서 찾을 수 있다. 후세인은 2003년 3월 미군 침공 직후 고향 티크리트의 지하 토굴에 은신하다 같은 해 12월 미군에게 생포됐고 3년여 만에 사형당했다.

카다피가 최후 순간까지 트리폴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던 것처럼 그가 트리폴리에 은신하며 기약 없는 후일을 도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지난 6월 카다피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여서 서방 연합군의 추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그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