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1 전담 지도… “창업 아이템만 가져오세요”
입력 2011-08-21 21:41
대학을 갓 졸업한 황보현(27)씨는 2009월 유럽 여행을 다녀오다 누구나 겪는 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항에서 수하물 검사를 할 때 큰 가방에서 짐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고 정리하는 게 너무 짜증스러웠다. 그는 그때 가방을 간편하게 만들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선반식 여행가방’을 만들어 발명특허를 냈다. 이 가방은 바퀴 달린 여행가방을 눕힌 뒤 위를 누르면 덮개가 수평으로 올라와 가방 내부가 여러 층의 선반 형태가 되는 구조다. 그러나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에게 창업은 막막했다. 마침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청년사관학교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입소한 지 벌써 6개월째.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청년창업사관학교 시제품 제작실에서는 황씨가 ‘선반식 여행가방’을 놓고 설계팀 기술자들과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선반 모양을 유지하는 각 모서리의 플라스틱 소재 기둥이 매끄럽게 펴지지 않아 방법을 찾는 중이었다. 그의 꿈은 무르익고 있었다.
황씨와 같은 청년사업가의 창업을 돕고 있는 중진공 산하 청년창업사관학교는 올해 처음 문을 열었다. 중진공의 전문인력과 자금, 장비 등을 지원해 이들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중소기업청 예산으로 180억원을 투자해 1인당 최대 1억원까지 사업자금을 지원한다.
현재 청년창업사관학교에는 224명의 예비사업가가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평균 나이 33세. 이들은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으면서 각자의 제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올 3월 입학한 241명 중 17명은 지난달 1차 중간평가에서 탈락했다. 이 학교 우철웅 과장은 “꿈과 열정도 중요하지만 당장 사업화할 혁신적인 아이템이 없으면 창업을 하기 힘들다고 보고 탈락시켰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연수원 건물을 리모델링한 청년창업사관학교 전용건물 ‘창의관’은 6600㎡(2000여평) 규모의 3층짜리 건물이다. 창의관의 사무실 30여개는 이미 사업자 등록을 끝낸 청년사업가들이 3~5명씩 방을 나눠 쓰고 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안에 150여개의 사업체가 입주해 있는 셈이다. 입교생들은 공통과정과 특화과정으로 구성된 이론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오후 2시30분, 3층 302호 강의실에서는 공통과정 과목 중 하나인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각자 수첩이나 노트북에 메모하는 등 진지한 표정이었다. 전정범(37)씨는 “업체 대표는 회계, 기술, 영업 등 모든 부분에 관여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혼자서 사업을 준비하려면 너무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자 현미경을 개발 중인 전씨는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외국 제품을 그대로 베껴내기에 급급한 실정”이라며 “직접 디자인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제대로 된 국산 제품을 만들 결심으로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지원했다”고 얘기했다.
창의관 사무실에서 만난 이해원(33)씨는 최근 ‘옆집아이’라는 어린이용 앱북을 만들었다. 앱북은 PC를 통해 책을 읽을 수 있는 e-북처럼 스마트폰 등 IT기기로 볼 수 있는 책이다. 어느 날 딸아이와 놀던 중 ‘만지면 반응하는 동화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청년창업사관학교에 들어오기 전 IT기반 콘텐츠 개발업체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던 이씨는 “철저한 준비 없이 창업을 했다가 실패를 몸소 경험했다”며 “이곳에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같은 종류의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경쟁과 자극을 유도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사업가들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아이디어를 실제 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중소기업 관련 기관 등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20명의 ‘전담 코치’가 이 과정을 검증하고 도와주는 1대 1 멘토 역할을 한다. 예산 등 사업 계획을 점검하고 이제까지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대학, 기업과 연결해 사업성을 자문하기도 한다. 코치 1인당 입교생 10~12명을 맡아 지도한다.
전담 코치를 맡고 있는 김용원 교수는 지난 4월 ‘선반식 여행가방’을 만든 황씨의 손을 잡고 직접 경남 김해까지 다녀왔다. 가방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공장을 수소문했더니 다른 곳은 모두 인건비가 싼 외국으로 옮겨가고 김해에만 한 곳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거친 아이디어가 상품성을 가지게 되는 단계에서 지원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돈을 많이 들이면 제품을 만들 수는 있지만 적정 수준의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고 시장에 ‘먹히는’ 제품이어야 사업성이 있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