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진흥공단 송종호 이사장 “취업 안돼 사업 꿈꾼다면 사양합니다”
입력 2011-08-21 18:54
‘창업사관학교’라는 아이디어는 송종호(55·사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게서 나왔다. 번쩍이는 아이디어와 끼가 중요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수년간 혹독한 연습생 과정을 거친 아이돌 가수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거다” 싶었다.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한데 모아놓고 창업에 필요한 모든 환경을 지원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중진공 사무실에서 만난 송 이사장은 대뜸 ‘K팝’ 이야기부터 꺼냈다. “최근 한류를 주도하고 있는 대중가요계는 그야말로 창의성이 중요한 분야인데 규율을 잘 활용하니 좋은 상품이 되더라고요. 창업도 마찬가지거든요. 창업자들의 아이디어와 엄격한 프로그램의 조화, 즉 자율과 규율을 잘 접목시켜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게 창업사관학교입니다.”
창업사관학교에는 만 39세 이하 기술 집약적 업종의 창업 준비자 및 창업 후 3년 미만인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첫 선발한 올해 1292명이 지원해 면접을 거쳐 241명이 최종 선정됐다. 사관학교라는 이름처럼 프로그램은 엄격하게 운영된다. 기술개발 진척 상황, 교육 참여도, 창업 전념도 등을 평가해 기준에 미달되면 탈락시킨다.
송 이사장은 “자질이 부족하고 열정이 없으면 가차 없이 탈락시키는 게 우리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입교생은 전원 2박3일간 해병대 훈련 과정도 거쳐야 한다. 그는 ‘준비된 창업’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아이디어가 상품화되려면 돈, 인력, 연구개발(R&D) 역량을 비롯해 사회제도, 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창업 환경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투자시스템을 꼽았다.
“미국은 아이디어만 좋으면 미래 가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거든요. 우리는 투자가 아니라 융자를 받습니다. 보증을 세우다 보니 창업에 실패하면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재기를 할 수 없죠.”
이어 “창업자가 개발한 기술을 잘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이 사들이고, 창업자는 그 자금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창업자를 한데 모아놓고 훈련하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중진공을 방문했던 마에다 마사히로 일본 중소기업기반정비기구 이사장은 “안산 연수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청년창업사관학교의 교육과정이 대단히 흥미로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송 이사장은 ‘취업이 안 돼서 창업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 “놀 거 다 놀고, 잘 거 다 자면서 무슨 창업을 합니까. 남의 돈 벌겠다는 사람이 자세가 안 돼 있는 겁니다. ‘이거라도 한번 해볼까’ 하는 심정이라면 그냥 관두세요.” 송 이사장은 오랫동안 창업 관련 정책을 담당해 왔다. 1997년 중소기업청 창업지원 과장, 2005년 4월 중기청 창업벤처본부장을 거쳐 2008년 2월 대통령실 중소기업·소상공인 관련 정책조정을 맡았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