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러] 경제난 계속되자 새 ‘돈줄’ 절실
입력 2011-08-21 18:49
그동안 북·러 관계는 북·중 관계에 비해 상당히 소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총 일곱 차례 중국을 방문했으나 러시아 방문은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에 불과했다. 그런 김 위원장이 2002년 8월 이후 9년 만에 다시 러시아를 찾은 것은 양국 관계를 강화해 대(對)중국 경제 의존도를 낮추고 상호 경제협력 방안을 찾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제재와 연평도·천안함 도발 이후 남한의 지원 중단으로 심각한 식량·에너지난에 처한 북한으로서는 중국 외에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절실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와 올해 잇따라 중국을 방문, 대규모 지원을 요청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북·러의 접근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21일 “철저하게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이번 방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면서 “중국만으로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러시아로 다원화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급속한 경제 성장에 따른 상시적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는 중국으로부터는 에너지까지 지원받기가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북한은 ‘식량은 중국, 에너지는 러시아’에서 얻어내려는 포석이 이번 방문에 깔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5일 김 위원장에게 보낸 광복절 축전을 통해 남북과 러시아 간의 천연가스·에너지·철도건설 분야 교류 계획에 있어서는 북한과 협력을 확대할 용의가 있다는 의향을 내비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문이 이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는 러시아와 남북을 연결하는 가스관 건설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남·북·러 모두에 이득인 이 사업들은 북한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은 주요 외화벌이 창구인 벌목공, 건설노동자의 극동지역 진출 확대와 구소련 시절 빌린 약 38억 루블 규모의 채무 탕감에 대한 협조도 부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러시아제 최신 무기 지원 요청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대북 경제 협력과는 별개로 김 위원장 방문을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 계기로 삼겠다는 계산이다.
이흥우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