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日 ‘잃어버린 10년’ 답습하나
입력 2011-08-21 21:39
미국과 유럽이 재정·신용 위기를 넘어선 더블딥(이중침체) 우려와 연일 계속되는 국채 수익률 하락 등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실물경제 위축과 더불어 국채 수익률이 곤두박질친 후 갖가지 국내외 악재가 맞물리면서 저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우려 속에서도 정작 팔을 걷어야 할 미국과 유럽 각국은 정치적 상황 등을 앞세워 딱히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의 더블딥이 거의 확실하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파이낸셜티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최근 미국과 영국, 독일의 채권시장 흐름이 과거 1988∼96년의 일본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80년대 후반 이상 징후를 보이던 실물경기가 급락하면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90년대 초 2% 아래로 떨어지면서 최근까지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 현상이 지금의 미국과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실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지난 19일 1950년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2% 아래로 밀려났다. 시장은 1.75%까지 하락할 가능성도 예상한다.
여기에다 FT는 부동산 시장의 몰락, 좀비은행, 제로금리, 과도한 부채 비율 등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일본화(Japanisation)’ 조짐을 부추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서방 국가들은 당시 일본처럼 디플레이션 상황이 아니고 고령화 문제도 없다는 게 근거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묘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채무한도 협상 타결과 신용등급 강등으로 더 이상 쓸 만한 정책 수단이 없는 상황이고, 유럽도 장기화되고 있는 재정위기에 투자자들을 달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오는 26일 3차 양적완화 조치에 대해 강한 암시를 던져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당장 새 경기부양책을 내놓기엔 부담이 있다. 이번 주 독일과 프랑스 재무장관 회담 및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발표도 예정돼 있지만 유로본드(유로존 단일 채권) 도입이나 유럽재정안정기구(EFSF) 기금 확대 같은 정책적 합의까지 이끌어내기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이 가운데 비관론은 거세지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 펀드인 핌코를 운용하는 빌 그로스는 “지금의 채권시장 추이를 볼 때 미국의 더블딥이 거의 확실하다”고 내다봤고,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또한 “미국과 유럽이 더블딥에 위험스럽게 접근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