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직 건 오세훈] 33.3% 불발 우려에 절박감… ‘벼랑끝 카드’ 뽑았다
입력 2011-08-21 22:55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발표한 이유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3일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위한 배수진(背水陣)을 친 것으로 풀이된다.
◇투표율 제고 위한 ‘정면 돌파’=오 시장은 향후 국가적 복지 패러다임을 결정지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실질적으로는 주민투표가 기대만큼 시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자 정면 돌파 카드를 내놓았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개함(開函) 최소 투표율인 33.3%를 넘기기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오 시장 측은 지난달 ‘수해 정국’이 지나가면 오 시장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TV 토론 등을 기점으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국제 금융위기 등 대형 악재가 이어지고 당내에서도 계파를 떠난 전폭적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자 투표율이 저조할 거라는 위기감이 보수 진영에서도 확산됐다.
특히 무상급식 이슈 자체가 초·중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 외에는 여야 지지자들의 폭넓은 관심을 끌기엔 부족한 측면이 있는 만큼 전선 확대라는 전략도 깔려 있다. 지난 12일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 이후 주민투표를 코앞에 두고 다시 시장직 카드를 던져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이슈의 한정성을 넘어 유권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려고 보수와 진보 간 싸움임을 부각시키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이번 주민투표가 ‘주민들이 직접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투표’가 아닌 ‘정치적 신임 투표’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의회 한나라당협의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이번 주민투표의) 본질은 서울이라는 거함의 운항 방향을 놓고 주권자인 서울시민의 뜻을 묻는 정책투표인 만큼 정책투표에 자리를 거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측된 수순=오 시장이 주민투표와 시장직 카드를 연계한 것은 투표에서 졌을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감안할 경우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8개월 넘게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교육청 등과 무상급식 정책을 놓고 정치적 타협점을 찾아내지 못한 끝에 치러진 주민투표에서도 패할 경우 ‘182억원 예산낭비’ 등 거센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식물 시장’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갖고 있는 모든 카드를 썼다는 얘기다.
무상급식 논란을 통해 장기적으로 ‘보수의 아이콘’으로서의 정치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직을 완수하지 못해도 민주당의 ‘복지 포퓰리즘’에 끝까지 맞서 싸운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앞서 오 시장은 2003년 9월 당 연찬회를 전후해 ‘5·6공 인사 용퇴론’과 ‘60대 노장 퇴진론’을 내걸고 당내 인적 쇄신 운동에 나섰다가 2004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오 시장은 2006년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이후 여권의 차기 대선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