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초대석-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긴 여행길, 새로운 만남과 신앙 나눔 설레죠”
입력 2011-08-21 17:57
나지막하게 물었다. “혼자 사는 게 외롭지 않으세요?” 팔순을 훌쩍 넘긴 노 교수는 호탕한 웃음으로 답했다. “모르시는 말씀, 난 참 행복해요.” 단정한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메고 콧수염을 기른 김동길(84) 연세대 명예교수다.
지난 주말 서울 대신동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팔순 중반에 접어들었으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단박에 궁금증을 풀어줬다. “내가 지난해 말에 디스크 수술을 했거든.” 한데, 그 몸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 국민일보와 함께하는 성지순례 크루즈 여행이다. 그가 호스트가 된 이번 여행은 다음 달 14일부터 10월 27일까지 13만9000t급 크루즈를 타고 그리스와 터키,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 기독교 유적지를 둘러보게 된다.
김 교수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며 “순례 길에 동참할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평남 맹산 출신인 그는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에서 서양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자민련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도 청년인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젊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나한테 배울 것이 딱 하나 있지. 노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갈수록 팔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고 낙심할 필요 없다.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런 눈이 생긴다. 하지만 신앙심이 없이 늙으면 절망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번 가을에 국민일보와 케이크루즈(kcruise)가 공동 주최하는 성지순례를 떠난다.
“좀 긴 여행이다. 타이태닉호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나게 큰 배를 타고 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지팡이를 짚고 어떻게 시내산에 오르나.
“새벽에 일어나 낙타를 타고 올라간다. 걱정은 없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중턱까지만 낙타가 데려다주거든.”
-이번 순례에 호스트로 참여한다.
“김 아무개가 호스트가 돼 떠난다는 소식을 전해 달라. 죽기 전에 들려줄 말이 있다. 유럽 역사와 지구촌 화약고 중동이 처한 현실, 나아가 한반도 미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이란 무엇인가이다. 여행 중 새 (작품)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시내산 등정이 세 번째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모른다. 새로운 얼굴을 만나 대화하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고 행복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왜 없겠는가. 세월이 좋으면 또 만날 수 있지만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수두룩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이가 들수록 쪼그라든다. 다행히 그 시대를 이겨내도 그 다음 세대가 안 좋다. 그게 세상의 순리라는 거다. 아등바등거리며 살아봤자 3대를 못 간다는 이야기는 틀린 말이 아니다.”
-언제부터 크리스천이 됐나.
“나는 나면서부터 크리스천이다. 어머니가 맹산에서 세례를 받았다. 난 뱃속에서 세례를 받은 셈이다. 우리 어머니는 1904년생이다. 24년 위다. 어머니로 인해 난 피할 수 없이 기독교인이 됐다. 내가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이다.”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을 소개해 달라.
“84년 긴 인생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그 사람 참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저 이는 왜 태어났어’ 하는 말을 들으면 안 되지 않나. 철학이 분명한 인간으로 살다 가야 한다.”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나.
“이승만은 지금까지 전기에 나타난 인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그만한 얼굴을 가진 사람을 아직까지 만나 본 적이 없다. 건국을 한 분인데, 이 시대가 그를 알아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본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로 대신하고 싶다. ‘함께 늙어가자. 가장 좋을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 그것을 위해 인생의 초반이 존재하나니.’”(kcruise.com·1599-3652)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