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약한 자를 돕는 약함의 은혜

입력 2011-08-21 18:06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

호주 시드니의 알렌 워커 목사는 어느 날 깊은 밤에 로이 브라운이라는 젊은이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빚을 지고 깊은 절망에 빠져 앞날이 암담한 나머지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며 전화를 한 것입니다. 워커 목사는 브라운이 절망에서 헤어나 새 삶의 길을 찾도록 예배 참여를 권유하는 등 어떻게 하든지 도움을 주려고 30분간이나 정성껏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고아로 자란 그는 끝내 킹스 거리의 가스가 가득 찬 방에서 자살했습니다. 워커 목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대한 도시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고독하게 사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시작된 것이 생명의 전화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살 문제가 심각합니다. 2010년 자살자가 1만5413명이라니 군대 사단 병력이 해마다 하나씩 사라지는 것입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혹자는 똑똑하게 살고 열심히 사는 것은 배웠지만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른 채 성장한 세대의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삶의 정체성, 즉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도록 돕는 것이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만약 자살 준비를 다해 놓고 곧 죽으려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면 여러분은 무슨 말로 권면하시겠습니까? 두 가지 질문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는 “왜 죽으려고 하십니까?”입니다. 죽으려는 사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무엇에 실망했는지, 어디에서 화가 났는지를 물으며 시간을 끄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진 왜 살았습니까?”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요?”입니다. 그런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질문함으로써 자살 생각의 동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편지합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살전 5:14)

초대교회는 약한 자들의 교회입니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약한 자를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합니다. 누가 약한 자를 붙들어 줄 수 있을까요? 약한 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사람은 약한 사람입니다. 마음 상한 자가 마음 상한 자를, 눈물 흘리는 자가 눈물 흘리는 자를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약함을 은혜로 여겼습니다(고후 11:30).

지난 폭우로 서울 북아현동에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이 매몰되어 죽었는데 지체장애인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장애인 시설에 있던 사람인가 알아보았더니 명부에 없었습니다. ‘아하, 정말 어려운 사람은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54세인 그는 결혼도 못한 채 86세 된 노모의 돌봄으로 살았습니다.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쇠약해져 더 돌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웃에 살던 80세 된 권사님이 자기 집에 허름한 방 하나를 만들어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하, 약한 자를 붙들어 주는 것은 강한 자가 아니로구나.’

자신을 강한 자로 생각하면 인생을 스스로 꺾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래도 약함이 은혜인 것은 약한 자를 붙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자살 사건에는 평균 6명의 가족 혹은 친구들이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생명사랑 밤길걷기’는 인생의 밤길을 걷는 이들과 함께 걸으며 생명을 보듬는 자리입니다. 오는 26일 오후 7시 시청 앞 광장에 모입시다. 함께 걸읍시다. 생명을 위해!

조경열 목사 (아현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