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말씀묵상 (Lectio Divina)

입력 2011-08-21 19:05


하나님이 만드신 참 좋은 세상

하나님이 뜻을 갖고 계셨다. 그 뜻이 무엇인지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니 아직은 시간이란 것이 없었다. 언제였을까, 아니 아직은 때란 것도 없었다. 드디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말씀에 뜻을 담으셨다. 말씀하심으로써 비로소 하나님 뜻이 하나님에게서 밖으로 드러나 구체적인 모습이 되었다.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리고 옹글게 이루어냈다.

이사야서 55장 10∼11절은 말씀하심의 철저함과 온전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 땅을 적셔 싹이 돋아 열매를 맺게 하고,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고 나서야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의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성취하고 나서야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생겼다. 세상 만들기는 말씀의 창조였다. 세상은 좋았다. 뜻이 좋았고 말씀하심이 그 뜻을 완벽하게 드러냈으니까. 더 근원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이 좋은 분이니까 그렇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드신 이야기가 기록된 창세기 1장은 이런 표현을 거듭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이 명제가 일곱 번 나온다. 매일 무엇을 만드시고 바로 이어서 이 표현이 나온다. 그런데 둘째 날 물을 위와 아래로 가르고 그 사이에 창공이란 공간을 만드시는데 곧이어 나와야 할 이 표현이 없다. 어떤 사람은 창공이 사탄이 활동하는 영역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보다 더 알맞은 게 있다.

하나님이 셋째 날에 하신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하늘 아래의 물을 한곳으로 모아 뭍이 드러나게 하신 것이다. 뭍을 땅이라 하고 모인 물을 바다라 하신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가 나온다. 둘째 날 하신 일과 셋째 날 먼저 하신 일은 물을 나눈다는 점에서 한 덩어리다. 먼저 위와 아래로 나누고 다음으로 아래의 물을 한곳으로 모아 땅과 바다를 만든다. 여기까지 물과 연관된 작업을 다 마치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것이다.

셋째 날 하신 일 다른 하나는 땅에 각종 식물과 나무를 만드신 것이다. 이 일을 마치고 바로 보시기에 좋았다는 표현이 나온다. 셋째 날은 이 아름다운 명제가 두 번 나오는 것이다. 엿새째는 이렇게 강조하여 표현돼 있다. 창세기 1장 31절이다.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하나님은 세상이 왜 그렇게 좋으셨을까? 왜 그토록 만드실 때마다 감탄하셨을까? 가만 생각해보라. 간단하다. 당신 말씀대로 됐으니까 좋으셨다! 하나님은 참 좋은 세상을 만드셨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창조의 비밀을 깨달았다. 디모데전서 4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한 걸 보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이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의 삶에는 좋지 못한 것이 있지 않은가. 맞다. 그러나 본디는 그렇지 않았다. 죄에 물들어서 그렇게 되었다. 방법이 있다. 위에 인용한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5절을 보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말씀과 기도, 이 둘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게 말씀묵상이다.

지형은 목사 (서울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