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 새롬지역아동센터장 김경희 집사 “독지가·주님의 기도응답이 큰힘 돼”
입력 2011-08-21 17:24
“저소득층 아이들을 돕기 위해선 개인 의지와 사명감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더라고요.”
지난 18일 경기도 부천 약대동에서 만난 새롬지역아동센터 센터장 김경희(49·새롬교회 집사)씨는 22년째 부천지역 빈곤·결손가정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학원은 고사하고 개인 공부방조차 ‘사치’인 초·중등학생 450여명이 이곳에서 친구를 만났고 꿈을 키웠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경우가 많아요.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거나 반대로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죠.”
센터 아이들에게 학원·개인 공부방은 ‘사치’
김씨는 아동센터로 올라오는 계단에 붙어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큰 종이 위에 백준엽(가명)이라는 이름이 써 있고, 축구 선수 그림이 있었다. 그 옆에는 경찰제복을 입은 여자 그림이 있었고 옆에 이미진(가명)이라고 써 있었다.
“아이들이 미술치료 시간에 그린 그림이에요. 한 아이가 종이 위에 누우면 다른 아이들이 누워 있는 아이의 형태를 따라 테두리를 그려요. 누워 있던 아이가 일어나 자신이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완성하죠.”
흐뭇하게 그림을 바라보던 그는 “아이들이 꿈을 갖게 된다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10년 전에 이곳을 거쳐 간 남매가 최근 찾아왔어요. 부모가 이혼하고 가정 형편도 무척 어려웠던 친구들이라 더 마음이 갔었는데 잘 자라 유치원 교사와 공무원이 됐더라고요. 감사하다고 하는데 오히려 제가 더 고맙더군요.”
민주화 운동 경험이 사회적 약자 편에 서게 해
김씨가 예장 통합 소속 새롬교회가 운영하는 새롬지역아동센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숭실대 수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4년 김 집사는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다. “당시에 선후배, 동기들과 함께 민주화를 외치고 사회 약자를 돌보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며 자원봉사를 하고 다녔죠.”
대학 졸업 후 찾아온 현실 앞에 김 집사는 부모님이 서울에서 운영하던 식당 일을 돕기로 했다. 그러다 90년 대학시절 함께 자원봉사를 했던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만들었는데 교사로 함께할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군요. 왠지 가야만 될 것 같았어요.” 그는 매주 2∼3일씩 부천으로 내려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대학생 때 느꼈던 사명감이 다시 살아나는 듯 했어요.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가 더해졌죠.” 바로 신앙이었다. 비기독교인이던 김 집사는 아이들을 섬기는 친구와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믿음을 갖게 됐다. “신앙이 제 눈을 이웃에게 고정시켰어요.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 그 십자가 사랑이 이웃 사랑의 모범답안이잖아요.”
92년 친구가 건강 문제로 공부방을 그만뒀다. 2년간 김씨를 지켜본 새롬교회는 그에게 공부방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고민이 됐죠. 당시 월급이 12만원이었거든요. 부모님의 반대도 엄청 심했죠. 하지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라 확신했습니다.”
92년부터 15년간 꾸준히 봉사해 온 그의 모습에 감동한 한 독지가가 2007년 1억원을 쾌척했다. 그 돈 등으로 165㎡의 센터를 개설할 수 있었다. “아동복지시설이라 보건복지부 규정에 따라 심리·치료 상담가, 영어 교사를 지원받을 수 있어요. 매달 320만원의 보조금도 지원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체험 학습의 기회를 주고 있고요.”
아이들 섬기는 봉사자·교인 모습에 주님 영접
그는 아주 가끔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할 때마다 강한 울림이 그녀를 잡는다고 했다. ‘내가 너에게 맡긴 내 아이들이야. 잘하고 있어 경희야. 너는 내가 책임질게.’
“제 의지와 사명감 갖고는 안 돼요. 하지만 하늘의 나는 새도 먹이시는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고 했으니까 믿고 이 아이들 끝까지 책임질 겁니다.”
부천=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