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퇴거 위기 서울역 노숙인 청소봉사 “우리가 변하면 코레일도 바뀔 것”

입력 2011-08-19 18:16


서울역에서 강제로 쫓길 위기에 처한 노숙인들이 역 주변 청소 봉사에 나섰다.

봉사활동에 나선 노숙인들은 코레일 측이 서울역 노숙인 퇴거 방침을 철회해 주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이들의 소원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19일 오전 6시 하늘색 청소용 덧옷을 입은 노숙인 20여명이 양손에 집개와 쓰레기봉투를 각기 들고 서울역 광장으로 나섰다. 이들이 술판 주변을 누비며 빈병과 담배꽁초를 주워 담자 얼굴을 알아본 노숙인 일부는 “수고한다”고 격려했고, 서둘러 술자리를 정리하는 무리도 있었다.

1시간 남짓 청소하자 거리가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청소가 마무리되자 큰 쓰레기봉투 6개가 가득 찼다. 청소에 참여한 노숙인 윤석기(46)씨는 “‘너희는 버려라, 우리는 치운다’는 각오로 청소에 임한다”며 목에 두른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청소 봉사단은 노숙인들에게 급식을 지원하는 기독교 단체 ‘해돋는마을’을 통해 꾸려졌다. 지난 7월 코레일이 강제퇴거 방침을 내놓자 단체에 모여 새벽기도를 하던 노숙인들이 뜻을 모았다. 봉사는 지난 1일부터 자발적으로 시작됐다. 노숙인들은 월·화·목·금요일 오전 6시 새벽기도를 마친 뒤 서울역 광장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있다. 봉사 첫날부터 매일 참여하고 있다는 한 노숙인은 “내가 버린 것은 내가 치운다는 생각으로 청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를 이끄는 김원일(62) 목사의 설교도 노숙인들을 변화시켰다. 김 목사는 “서울역만 탓하지 말고 자신들을 돌아보라”며 노숙인들을 설득했다. 5명으로 시작한 봉사단은 3주 만에 20여명으로 늘어났다.

노숙인들은 아침 청소를 서울역과의 대화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 쓰레기봉투를 손수레에 싣던 박태순(58)씨는 “이렇게 청소하고 뉘우치면 역에서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화하고 뜻을 합치면 서울역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며 ‘합심해 선을 이룬다’는 로마서 구절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레일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코레일은 당초 22일부터 노숙인들의 서울역사 출입을 금할 계획이었으나 지하 환승센터 공사를 이유로 지난 16일부터 통제를 시작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역 이용자 안전 문제로 더 미룰 수 없었다”고 밝혔다.

노숙생활 13년째인 천용덕(57)씨는 “이번 여름 비 때문에 다들 고생이 심했다”면서 “겨울에도 역사 출입을 금지하면 추위를 못 이긴 사람들이 유리창을 부수고라도 들어가려 할 것”이라며 퇴거 방침에 우려를 나타냈다.

글·사진=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