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범죄 수사와 학자에 대한 예의
입력 2011-08-19 17:35
대학은 최고의 지식인 집단이다. 교수들은 대부분 각고의 노력 끝에 수월한 학문적 업적을 쌓은 뒤 정밀한 검증을 거쳐 임용된다.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논문을 쓰기 위해 밤늦도록 연구실의 불을 밝힌다. 이들 가운데 경륜과 윤리를 갖추면 지성인 반열에 오르고 시대의 등불이 돼 미래를 밝힌다.
이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지성에 대해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 학문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연구에 불편하지 않도록 행정적 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공부하느라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학자들이 단순한 절차의 문제로 고통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에서 활동하다 들어온 학자들이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김정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의 경우도 그렇다. 이산수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폴커슨상 수상자인 그는 ‘세계 0.1%’라고 평가받는 세계적 수학자다.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수석연구원과 카네기멜론대 교수 등을 거쳐 2006년 연세대 교수로 부임한 그는 해외석학을 초빙하거나 인턴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지만 공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단순한 절차의 문제임이 명백하다면 수사당국도 세계적 학자의 명성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반 형사범이나 파렴치범을 대하듯 압수수색영장을 내밀며 사무실에 들이닥쳐 컴퓨터와 관련서류를 들고 나가는 것은 학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의 교비 횡령 의혹 역시 무혐의로 내사 종결됐지만 그동안 본인과 학교가 입은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교수들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투명성의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 연구행위의 순수성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연구비의 경우 행정직원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연구목적에 포함된다면 상당 부분 재량권을 인정해 교수들이 학문으로 국가사회에 기여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