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맹경환] 커피공화국
입력 2011-08-19 17:36
바흐(1685∼1750)의 사랑받는 작품 중에 ‘커피 칸타타’가 있다. 1732년쯤에 완성된 곡으로 커피를 끊으라는 아버지 슐레드리안과 딸 리스헨의 실랑이가 주제다. 아버지가 커피를 끊으라고 할수록 커피에 대한 딸의 욕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리스헨은 “커피는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백포도주보다 부드럽다”고 노래한다. 아버지는 다시 커피를 끊지 않으면 외출도 안 되고, 치마도 안 사준다고 협박하지만 딸은 커피만 준다면 말을 듣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최후 카드를 꺼낸다. 커피를 끊지 않으면 남편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딸은 “커피는 만지지도 않겠다”며 굴복한다. 하지만 반전이 숨어 있다. 아버지가 신랑감을 찾으러 나가지만 딸은 그녀가 원할 때 커피를 마시도록 하는 내용을 결혼 계약서에 쓰지 않으면 누구도 구혼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커피 광고 같기도 한 ‘커피 칸타타’를 통해 18세기 유럽에서 커피가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1890년대 전후로 추정된다. 고종 황제는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처음 맛보고 그 맛에 매료됐다고 한다. 환궁한 뒤에도 커피 맛을 잊지 못해 커피를 계속 찾았고 신하들에게 커피를 권하거나 하사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백성들은 커피가 색이 검고 쓴맛이 나는 것이 서양의 ‘한약탕국’과 같다고 해서 ‘양탕(洋湯)’이라고 불렀다. 물론 지체 높은 양반네들만이 즐기는 외국 사람들의 음료로만 인식됐다.
100년이 넘게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 불릴 만하다.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가에 커피 전문점 10개는 기본이다. 그렇게 많은데도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야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가정에서도 커피 머신을 사서 ‘내려’ 먹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도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대학에는 ‘바리스타학과’까지 있다. 커피시장 규모는 커피전문점 1조원, 커피믹스 1조1000억원, 커피음료 7000억원, 각종 커피기계와 원두커피 2000억원 등 3조원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6000원짜리 칼국수 점심을 먹고 5000원 안팎의 커피 한 잔을 꼭 마셔야 하는 요즘. 딸이 커피를 끊게 하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슐레드리안이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맹경환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