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타워팰리스 옆에 사는 까닭은… 최고급 오피스텔 10억여원 들여 개조해 사용

입력 2011-08-18 01:01


동선 노출 등 보안 무신경…소문 돌자 제3 관저 물색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정보기관의 수장이 서울 강남 한복판, 타워팰리스 옆 빌딩에 살고 있다면?’ 누구나 ‘설마’ 하며 선뜻 믿지 않겠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내 관저 대신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입주해 있는 도곡동 ‘I빌딩’의 ○○층(823.05㎡·248.94평)을 개조해 관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소 소유의 이 건물은 양재천변을 따라 타워팰리스, 대림아크로빌 등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는 호화단지에 자리 잡고 있다. 연구소는 12∼18층을 사용하고, 나머지 1∼11층엔 일식집, 여행사 등이 입주해 있으며 일반인 출입이 자유롭다.

여권 관계자는 18일 “지난해 7월쯤 원장 내외가 거주할 수 있는 시설로 이 빌딩 ○○층이 리모델링됐다”며 “원 원장과 부인이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입주 전 원 원장은 내곡동 관저에서 헛디뎌 발을 다친 적이 있다고 한다. 다른 여권 관계자도 “국정원장이 왜 이렇게 외부에 노출되기 쉬운 장소로 거처를 옮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원 원장 가족이 외부 접근이 쉽지 않은 내곡동보다 스포츠센터와 각종 근린시설이 풍부한 도곡동 거주를 선호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어쨌든 국정원은 이 사실을 극비에 부쳤다. 인테리어 공사 역시 은밀하게 진행해 다른 입주 업체 직원들은 물론 빌딩 관리소장조차 알지 못했다. 연구소 입주 층에는 별도 엘리베이터가 있고, 층마다 지문인식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 빌딩은 업무시설 및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돼 있어 주거용 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 절차 역시 생략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변경 신고 없이 거주 시설을 지었다면 이는 엄연히 불법”이라며 “해당 빌딩의 경우 변경 신고가 없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공사비용으로 10억원 넘게 예산을 책정했다가, “너무 호화로운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곡동 관저’에 대한 얘기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올 초부터 빌딩에 원장 관저가 생겼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논란이 커지자 지난달 도곡동 관저를 없앴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국정원은 제3의 관저를 물색했고, 서울 한남동에 부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역에는 외교장관, 국방장관, 합참의장, 해병대사령관,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몰려 있어 ‘보안’은 도곡동보다 확실히 낫다는 평가다 많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장이 내곡동 관저를 떠난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정보기관장의 동선이 이처럼 공개됐다는 게 더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여권 내부에서 원 원장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권력 암투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 과정에서 관저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관저에 대한 투서와 제보가 잇따르면서 강남구청이 이달 초 빌딩 무단증축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다.

한편 국정원 측은 “1995년 지어진 내곡동 관저가 너무 낡고, 빗물이 새 수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공사 때문에 예전부터 안가로 활용했던 도곡동 빌딩을 임시 관저로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원 원장이 현재 도곡동에 거주하는지는 보안사항이어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