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재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英·佛도 바다명칭 싸우다 병기… 이런 사례 자꾸 알려야”

입력 2011-08-18 21:26


광복절이 있는 매년 8월은 한·일 간 갈등의 파고가 가장 심해진다. 올해는 독도 갈등에 동해 표기 문제까지 겹쳐 긴장감이 어느 해보다 팽팽하다.

우리 측 선봉에 서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정부의 대응 논리와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정재정(60) 재단 이사장은 올해 휴가를 추석 뒤로 미뤘다. 18일 서울 통일로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정 이사장은 “요즘은 독도·동해 문제로 흰 머리카락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며 웃었다. 최근 가장 큰 이슈인 국제수로기구(IHO)의 동해·일본해 병기 문제를 끄집어내자 그는 며칠 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온 얘기를 꺼냈다.

“러시아고고학연구소를 3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연구소에 붙은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돼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공란으로 돼 있었어요. 이상하다 했는데 바로 옆에 한반도를 확대한 지도를 뽑아놓고 러시아어로 ‘동해’라고 기록해 놨더라고요.” 정 이사장은 “지도에 지명 하나 바꾸려면 이처럼 상대방과 먼저 신뢰를 쌓아야 하고, 교섭을 하면서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해·일본해 병기 문제는 어떻게 돼 가나.

“IHO의 기본 원칙은 당사국이 명칭 합의를 못할 경우 각국이 사용하는 지명을 병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IHO의 공식 해도(海圖) 1∼3판(1929년, 37년, 53년) 발간 때는 우리가 식민지 시절이거나 해방 직후여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일본이 우위를 점한 29년부터 일본해 단독 표기가 굳어졌다. 우리 국민들은 왜 단칼에 동해로 표기 못하느냐 채근하는데 현재 일본해 단독 표기를 막고 있는 것 자체도 큰 성과다.”

-IHO 의장단에서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되 부록에 ‘동해’를 넣자’는 절충안을 제안했는데.

“우리 국민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고, 사실상 이 절충안대로 되기는 힘들 것이다. 일단 내년 4월 총회에서 전체 80개 회원국이 4판 발간을 목표로 하는 만큼 동해·일본해 공동 표기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효과적인 공략 방안이 있나.

“영국과 프랑스도 바다 명칭 갈등이 있었는데 몇 년 전 IHO 총회에서 각국의 명칭을 병기하기로 했다. 그런 사례를 자꾸 실무그룹 회원국과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제국주의 경험을 버리지 못해 설득이 쉽지 않다. 과거사를 반성할 줄 모르는 뻣뻣한 이웃은 힘들다.”

-독도와 동해 표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원인을 치유하는 병인(病因) 요법으로, 역사 연구를 심화하고 자료를 수집해 상대방과 역사논쟁을 벌일 때 우리가 옳다는 증거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대증(對症) 요법으로, 일본이 단발적으로 시비를 걸 때마다 그에 맞게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생활(生活) 요법, 평소에 독도 교육을 실시하고 국민들의 역사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IHO 회원국에 대한 설득과 별개로 91년 유엔 가입 이후부터 각국 공공기관과 지도 제작사 등에 동해·일본해 병기 비율을 높이는 작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2%에 불과했던 병기 비율은 20년간 10배 가까이 늘어 2009년 현재 28%까지 올라왔다. 재단은 지난 3년간 매일 전 세계 주요 공공기관 1000여개 홈페이지를 모니터링해 독도와 동해 표기 오류를 고치고 있다. 그동안 30여건이 시정됐다.

정 이사장은 “지도를 한번 고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면서 “국제사회에서 우리 국력이 올라가면서 동해·일본해를 병기해 달라는 우리 발언도 먹히고 있다”고 했다. 특히 스페인어권과 프랑스어권 국가들을 공략 중이다. 정 이사장은 “지도 제작이 가능한 국가가 많지 않기 때문에 통상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나라들은 지도를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나라를 잘 설득하면 병기 비율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한·중·일 등 동북아 지역의 역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공공기관으로 2006년 설립됐다. 정 이사장은 2009년 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