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콜센터 24시… 이탈주민들 무슨 고민하나

입력 2011-08-18 18:21


20대 여성: “간호대학을 내년에 졸업하는데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한 병원에 입사원서를 냈어요. 모집요강에 취업보호 대상자는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저는 무엇을 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떻게 해야 하죠?”

상담사: “일반적으로 취업보호 대상자는 국가보훈처 등에서 지정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는 북한이탈주민도 취업보호 대상자로 삼고 있어서 별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제가 병원에 문의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상담사 황명희(60·여)씨는 이 여성이 지원한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황씨는 병원 인사팀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 다시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알아보니 취업보호대상자에게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한 것은 보훈대상자에 한정돼 있더군요. 채용공고에 게시돼 있었는데 잘못 보신 것 같아요. 보훈대상자에게 채용 시 일부 가산점을 준다는 것인데 선생님은 해당되지 않아요. 그래도 힘내시고 내일 면접 잘 보세요.”

16일 오후 3시쯤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5층에 자리잡은 탈북자콜센터(1577-6635)에 걸려온 상담 전화 내용이다. 황씨 등 두 명의 상담사들은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헤드셋을 잠시도 벗지 못했다.

지난 5월 31일 정식으로 개통한 탈북자콜센터가 새터민들의 고민해결소로 떠올랐다. 지난달 말까지 두 달 동안 걸려온 전화만 3314건. 상담사 1명당 하루에 50∼60건의 상담을 했다.

지난 6월말 현재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2만3000명. 지난해 11월 2만명을 넘어선 지 7개월 만에 3000여명이 추가로 들어왔다. 2000년까지만 해도 한 해 입국자가 300명 정도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국내 입국 탈북자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국내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아졌다. 이에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은 이들의 고민을 듣고 해결해 주는 콜센터를 만들었다.

상담종류도 천차만별

120㎡ 규모의 콜센터에는 8명의 상담사가 일한다. 4개조 중 3개조가 아침 7시부터 8시간씩 교대로 근무한다. 1년 365일 가동되는 콜센터에는 취업준비뿐 아니라 주택, 교육, 동료 탈북자의 한국입국 등 각종 문의가 쏟아진다.

이날도 한 20대 남성은 중국에 있는 동료 탈북자를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상담사는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한국에 데려오는 데 재단이 도와줄 방법은 없으며 한국에 거주 중인 탈북자만을 지원할 수 있다는 대답을 해줘야 했다.

상담은 주로 오전 시간대에 몰린다. 황씨는 “주로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상담전화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심야상담은 상담이라기보다 넋두리를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황씨는 “가족도 없이 혼자 탈북한 경우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밤에 전화를 걸어 온다”며 “비슷한 과정을 견뎌내고 어려움을 극복한 다른 탈북자들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꿈과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격려하면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상담내용은 성별에 따라서 다른 특징을 보인다. 남성의 경우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는 북한에서 온 남성은 남한에서 결혼 상대를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북한에서 몸에 밴 습관과 관념 때문에 맘에 드는 여성을 만나도 쉽게 커플로 맺어지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혼기를 놓치고 혈혈단신으로 생활하면서 외로움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가끔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은 현실적인 취업이나 건강, 자녀교육 문제 등을 고민한다. 예를 들어 출산지원금은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학교를 다니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식이다.

최근에는 법률지원을 요청하는 상담이 크게 늘고 있다. 중국인 남편과 사는 한 탈북 여성은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협의이혼을 원한다고 호소했다. 탈북자 출신 상담사 박순희(41·여·가명)씨는 무료법률상담이 가능한 변호사를 연결해 줬다.

미리 신청하면 매주 월요일 콜센터를 방문하는 변호사와 직접 대면상담을 할 수 있다. 법률상담은 대한변호사협회의 도움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수요가 많아 조만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전담 변호사를 고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안효덕 생활안정부장(50)은 “이혼, 가정폭력 등에 대한 법률 상담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이를 전담하는 변호사를 두고 숫자도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는 탈북자가 이해한다

상담의 기본은 경청이다. 탈북자상담 매뉴얼에도 제일 먼저 등장하는 항목이다. 탈북자들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한다. 상담사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상담사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관련 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탈북자와 국내 상담사를 2인 1조로 배치한 것도 역할 분담을 위해서다. 한국의 행정관련 제도는 아무래도 한국인 상담사가 잘 안다. 반면 탈북자 상담사는 죽을 고비를 거쳐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미리 겪었기에 탈북자의 처지를 쉽게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다.

8년 전 탈북해 상담사로 일하고 있는 마춘옥(61·여·가명)씨는 편안한 목소리로 탈북자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전화상으로 들리는 그의 구수한 함경도 사투리를 듣고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어머니 같다고 말을 붙인다. 마씨는 이날도 상담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고저, 편안하게 얘기하시면 됩니다”라는 함경도 사투리를 쓰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끌었다.

탈북자들은 국내 정착 초기부터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12주짜리 하나원(탈북자 교육기관) 과정을 거친다. 통일부에 따르면 탈북자 중 20% 정도는 하나원 과정을 수료하고도 정서불안 등 심리적 문제를 호소한다. 이 비율은 하나원을 떠나 본격적인 남한 생활이 시작되면 2∼3개월 만에 30∼40%까지 올라간다.

탈북자들은 상담전화를 걸면서도 신분노출에 따른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다. 상담사들은 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이름을 묻지 않는다. 상대방 전화번호와 하나원 기수 정도만을 묻는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탈북자 출신 상담사들 역시 신분 노출을 꺼렸다. 혹시라도 자신의 신분이 노출돼 한국에서 보복테러를 당하거나 북한에 있는 친인척이 곤욕을 치를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상담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30분 이상은 하지 않는다. 길게 통화할 경우 다음 사람이 상담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추가로 상담을 받거나 지방에 거주하는 탈북자에게 상담이 필요한 경우 전국 30곳에 배치된 101명의 전문 상담사와 연계해 따로 만나 상담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준다.

탈북자의 특수성 이해해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탈북자 지원제도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탈북자들이 정부나 민간단체의 지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딸의 돌을 맞아 잔치를 하려는데 경제적인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상담전화도 있었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지나친 의존성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탈북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반론이 있다. 이들이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랫동안 개성과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 체제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탈북자에게 경제적인 지원만 해주면 된다는 생각은 곤란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히려 탈북자들의 빠른 정착을 돕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와 관련 콜센터 관계자들은 탈북자들의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돕기 위해 당장 상담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상담수요가 폭증하고 있어 상담사를 2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요청했다.

상담사를 총괄하는 박광옥(43·여·가명)씨는 “동남아 출신 결혼 이주민들이 다문화 정책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듯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도우려면 보다 따뜻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