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지친 개미 한마리가 물었다 “삶이란 무엇인가”
입력 2011-08-18 17:52
나는 한 마리 개미/글 저우쭝웨이 / 펜타그램
아이 손을 잡은 엄마가 서점 매대 위에 놓인 책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이것 좀 봐, 책 위에 개미가 있네.” 엄마는 훅, 입 바람을 분다. 미동도 없다. 움직일 리가 없지. 개미는 불청객이 아니라 책 표지를 장식한 ‘표지인물’이다.
제목조차 없이 개미들을 표지로 내세운 철학우화 ‘나는 한 마리 개미’는 정오 햇살 속에 선 채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개미 한 마리의 일대기이다. 개미는 한평생 꽃잎을 타고 강물을 건너고, 거미로부터 탈출하고, 사랑을 구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의 끝은 결국 죽음이어서 삶은 위험과 유혹, 쓸데없는 영웅심과 미망투성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글은 펼친 두 쪽에 2∼3줄이 고작인데다 개미는 개미만큼 작아서 책의 8할은 텅 비어 있다. 이런 여백 때문인지 책은 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시공주니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훨씬 동양적 느낌을 준다. 왼편 구석에는 잠언 같은 글귀가 배치됐다.
주사위를 굴리려는 개미에게 친구가 말한다. “너는 운명을 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실은 운명이 너를 굴려 가는 거야.” 대나무로 위장한 대벌레를 보고 주인공 개미는 이런 지혜를 깨닫는다. “영웅은 어떻게든 자신을 도드라지게 내보이려 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잠자코 자신을 감춘다는 걸.”
북 디자이너는 개미만 등장하는 가짜 책표지로 서점에서 실험을 하다 입 바람 부는 엄마를 만났다고 한다. 그 엄마 덕에 제목 없는 표지를 감행한 용기를 냈다. 불행히도 중국판과 한국판 모두 제목을 새긴 굵은 띠지를 둘렀다. ‘글자가 있어야 한다’는 당국의 경고 때문이었다. 띠지를 벗기고 나면 진짜 훅, 입김을 불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저자 저우쭝웨이는 난징 사범대학 교육과학학원 부교수, 그림을 그린 주잉춘은 중국의 대표적 북디자이너다. 이 책에서 한국의 ‘88만원세대’와 유사한 ‘개미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는데, 메시지를 읽어내는 건 독자 몫인 것 같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