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입력 2011-08-18 17:40


무궁화 꽃이다! 광복절 아침, 태극기를 내걸던 내 눈이 동그래졌다. 거실서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3층 건물 옥상에 무궁화나무가 꽃을 잔뜩 피운 채 서 있었다. 이제까지 왜 못 봤지? 촉촉한 아침 공기 속 활짝 핀 연분홍 꽃이 청초해 보여 눈이 즐거웠다.

또 무궁화 꽃이네! 오후에 집 근처 우체국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췄다. 우체국 뒤뜰에 커다란 무궁화나무가 분홍 꽃을 송이송이 매달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피어 저녁이면 시들어 떨어지는 꽃이라 3시쯤엔 수줍은 듯 꽃잎을 살짝 오므리고 있었다. 새색시처럼 수줍은 모습이었다. 언젠가부터 보기 힘들어진 무궁화 꽃을 하루에 두 번이나 만나다니 횡재한 것 같았다.

이태 전 봄, 딸과 함께 일본의 한적한 온천 도시인 유후인에 간 적이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집집마다 마당에 벚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공원에 가도, 기차를 타러 가도, 벚꽃이 눈에 보였다. 까만 지붕을 배경으로 핀 진분홍 꽃이 매혹적이었다.

예전엔 무궁화 꽃도 그랬다. 모든 꽃들이 지고 잎만 무성한 7월부터 100일 동안 줄기차게 피고 지는 흰빛, 분홍빛, 자줏빛, 파란빛 무궁화 꽃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집 마당에서, 울타리에서, 마을길에서도. 하지만 이젠 보기 힘들어져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가 됐다.

그 많던 무궁화는 다 어디 갔을까. 맞다. 국회의원 배지에, 관광호텔 등급판에, 열차 이름에, 애국가 노랫말에 갇혀버렸지. 그래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란 노랫말과 달리 삼천리서 가끔 만나는 꽃이 되어버렸지.

무궁화는 예쁜 꽃이 아니라 벌레 먹는 꽃이라는 속설 때문일까? 그 말은 일제 때 일본이 우리에게 무궁화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주려던 꼼수에서 생겼다던데. 벌레 먹은 무궁화만 남기고 좋은 품종은 일본으로 가져가 더 좋은 품종으로 개량했다던데. 그래서 요즘 멋진 무궁화 수종은 일본에서 구해 와야 한다지 아마. 하루에 두 번 무궁화 꽃을 보아 들뜬 마음이 그동안 못 봤던 아쉬움으로, 나라는 해방됐어도 나라꽃은 아직 해방되지 못했네, 하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졌다.

해방된 삼천리강산에는 봄이면 꽃 잔치가 열렸다. 장미축제, 철쭉제, 해바라기축제….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이 벚꽃축제다. 일본의 나라꽃 벚꽃은 진주에서, 화개장터에서, 여의도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데 막상 우리의 나라꽃 무궁화축제는 찾기 힘들다. 우리 국민이 무궁화 꽃을 별로 안 좋아한다며 지자체들이 무궁화나무를 열심히 심지 않는다던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난다. 설마 아니겠지.

‘안 보면 잊혀진다’는 속담이 있다. 앞으론 무궁화나무를 가까운 곳에 많이 심어 우리가 좋아하는 꽃으로, 한국 하면 떠오르는 꽃으로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나라꽃에 합당한 대접이 아닐까. 다행히 홍천과 안산 등 몇 곳에서 ‘나라꽃 무궁화축제’가 열린단다. 그곳에서 우리 모두 큰소리로 외쳐보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