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저기 평화가 온다
입력 2011-08-18 18:04
이사야 11장 5∼9절
모두가 살기 어렵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습니다. 평화가 사라지고 정의가 무너졌다고 사방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은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우성 속에서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평화가 오고 있으며 이제 평화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외쳤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평화의 새 세상이 열리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무슨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평화를 꿈꾸고 새로운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과 평화의 상상력을 가져야 합니다. 평화가 깨지고 분단이 깊다고 한탄만 해선 안 됩니다. 대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대안을 상상해야 합니다.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도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득하기 때문이다”(9절) 이게 무슨 말입니까? 평화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평화가 오기도 하고 갈등이 고착되기도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보복과 살육이 아니라 화해와 용서,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아는 지식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우리는 광복 66년이 지나도록 아직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평화에 목마르고 속히 비극적인 역사가 끝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단지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참된 평화와 통일은 주님을 아는 지식, 서로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는 과정을 요구합니다.
주님은 허물과 모순, 죄로 얼룩진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용서받았으니 서로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거저 받았으니 우리 또한 거저 주는 인격을 지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움이 아닙니다. 미움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역사는 없습니다. 새로운 역사는 미워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그 미음을 넘어설 때 열립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 소리가 들립니다. 남북한 분단문제, 젊은이들의 실업문제, 등록금문제, 전셋값 폭등 등 모두가 참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는 점차 불안정해 가고 희망의 등불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분노의 함성도 정당하고 탄식과 눈물도 이유가 있습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이사야는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어두워도 저기 평화가 온다고, 우리 스스로 평화의 상상력을 지닌 존재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그날은 올 수 있다고, 또 그날을 만들어 갈 사람은 바로 당신이라고 이사야는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망이고 평화입니다. 내가 화해의 일꾼이며 주님을 아는 지식을 온 땅에 널리 전해야 할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평화를 가지고 오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진우 목사 (서울제일교회)